サックスの思い出(パート2) _ 釜山サムライエッセイ0009
釜山サムライさんの久しぶりのエッセイ。サックスの思い出、パート2をお届けします。
(パート2)
かくして、運指法から習ってからびっしり鍛えられるうちに冬がやってきた。
手の指が冷えて外で練習するのは無理なのでやむなくボンゴ車に入って毎日練習した。
朝10時ころ山に登る時、おやつにするとパンを持って行ったものだ。
夕方になって装備を取りまとめて、片付けようと車内を見回す。
朝、買ってきたパンの袋が手つかずのままである。こういうことは茶飯事であった。
この二人、どれほど夢中になっていたかは皆さんの想像に。。
何日が経ったころ、二人、初めて酒を飲むことがあった。
酒が回るとAさんにこう言った。
「一日7時間くらい練習をやったってのは嘘ではなかったですね~ 本当に驚きました」。
すると、Aさんのいうには
「僕もみずから激しく練習してきたと思っていたけど、あなたこそ僕より粘りづよい人であることが分かりましたよ~。僕よりもっとすごい人がいるというのを今になって知りました」。という。
Aさんはサックス以外の唯一な趣味といったら海づりである。波が散る磯で釣りをする姿をセルフで撮った写真をみせる。
酔いが回るとAさんは
「僕は他人との付き合いが苦手なもので何だってひとりでやるんです。幼いころ両親が旅立って、自分は一人ぼっちになったせいか、朗らかではない性格で生きてきました」。
そのためか、口が重い。人の前で自慢は決してしない。ひいては自分をみずから厳しく戒める方であるという。
私がサックスを習ったばかりのころ、こういう性格を彼がみせた出来事があった。
共に練習中のある日、だれかが音を聞きつけてやっってきた。自分(Bさん)もサックスをやっているという。
サックスを手にとって2年ほどになると言いつつ車からサックスを持ち出してくる。
こうして何日か過ぎた。3人で酒を飲んでいたところ、AさんがBさんに向かって真顔になって言う。
この二人は、歳もほぼ同じであった。
「あなたは音楽を止めたほうがあなたのためにもよいことと思います。2年もやったという実力がこれしかできないなんて。拍子もろくに取れない人が音楽をやるなんてむりです」と。
Bさんの顔色をうかがうこともなくきっぱりと割りきって言ってのけるのだった。
いや~~酷いことをいうもんだ。それもよく知らない人に。。
けれども、私の師であるAさんの言ったことは正しいことであった。。。。というのは、
何日間か3人ともにいたので私もそう思っていたからであった。
自分は上手だと思って素人の私にあらゆるスケールばっかり誇らしげにやってみせていたBさんが
Aさんからこんな酷い話を目の前で聞かされて、どれほど恨めしかったことか。
恨めしさのあまりなのか。。涙まで流していた。
言うまでもなく、その後からはBさんは二度と顔を出さなかった。
では、こういう厳しいAさんの下で、私はどうなったでしょうか。。
(パート2)ここまで
한국어(パート2)
이렇게 해서 운지법부터 배우고, 열심히 연습하는 동안 겨울이 찿아 왔습니다.
손가락이 시려워 밖에서의 연습은 무리. 어쩔수 없이 봉고차안에 들어 와
매일 연습했다.
아침 10시경, 산에 오를 때 간식으로 빵을 가지고 가곤 했다.
저녁이 되어 장비를 정리하고 차안을 둘러 본다.
아침에 사 갔던 빵봉지가 손대지도 않은 채 그대로 있다.
이 두사람, 얼마나 연습에 열중했는가는 여러분의 상상에..
얼마간의 날들이 지났을 때쯤, 둘이 처음으로 술을 마시게 되었다.
술기운이 돌자 나는 A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루 7시간씩 연습했다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었네요.
정말 놀랐습니다“
그러자 A씨 말은 ”나도 스스로 독하게 연습해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당신이야 말로 나보다 근성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더 지독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오늘이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라고 한다.
A씨는 섹소폰이외의 취미라면 바다낚시이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에서 낚시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셀프로 찍은 사진을
보여 준다.
취기가 더 오르자 A씨는 나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서툴러서 무엇을 하든
혼자 합니다. 어릴 때 양친이 돌아 가셔서 자신이 외톨이가 된 기분이 들어
밝지 못한 성격으로 살아 왔습니다“
그 때문일까? 그는 입이 무겁다.사람들 앞에서 자기자랑은 결코 하지 않는다.
더욱이나 자신을 스스로 엄격하게 다스리는 편이라고 한다.
내가 섹소폰을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이러한 성격의 그가 보여준 사건이 있었다.
같이 연습중인 어느 날, 누군가가 소리를 듣고 왔다. 자신도(B씨) 섹소폰을
하고 있다고,,
섹소폰을 손에 잡은지 2년됐다고 말하면서 차에서 악기를 꺼내 온다.
그리하여 몇일이 지났을까. 3명이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A씨는 B씨를 향해
정색을 한 얼굴로 말한다.
이 2사람의 나이는 거의 비슷했다.
“B씨~~! 당신은 음악을 그만 두는 것이 당신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년이나 했다는 실력이 그것 밖에 되지 않습니까~~!
박자도 제대로 못맞추는 사람이 무슨 음악을 한다는 말입니까~!!
B씨의 표정에도 신경쓰지 않고 단호하게 딱 잘라 말한다.
으와~~~!!! 심한 말을 하네. 그것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
하지만, A씨가 말한 것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라고 하는 것은, 몇일간 3명이 같이 연습을 하였기에..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스스로 상당한 실력자라고 생각하여,초보인 나에게 온갖 스케일을
자랑스럽게 보여 줬던 B씨가 A씨에게서 이런 험한 말을 눈앞에서 듣고는
얼마나 서러웠을까.
서러운 나머지,,,눈물마저 흘리고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B씨는 두번 다시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이런 엄격한 A씨 지도하에 있던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パート2)
ーサックスの思い出ー 釜山サムライエッセイ0008
ーサックスの思い出ー
(パート1)
あれが中学校か高校の時であったかは今ははっきり覚えていないけど。。
テレビのショー番組でサックスという楽器をもって演奏するのを初めてみた。
ラジオで流れてくるサックスの音は聞いたことはあつたけど、画面で直接見たのは初めてではなかったかと思う。
「サックスって、他の楽器と違って素敵な音を出す楽器だな」。
いつになったらあれを習えるかという漠然とした思いばっかりしていた。
いわば、当時は"高嶺の花"であった。
その当時、サックスというものは価格が相当に高いものだったので
一般の楽器商店には売っていなかったと思う。
その後30年もすぎた2009年、秋のある日であった。
妻と一緒に家からちょっと離れた荒嶺山いうところへ初めて行ってみた。
私はあまり山へ行かないので荒嶺山という名前だけは知っていたけど、ここ釜山ではかなり知られた山なんだそうだ。
山の入り口からアスファルト道路の両側はすべて一種類の木だけで植えられている。
桜の木である。
桜の咲き盛りの4月ともなると大勢の人が花見に来る。
3年前、旅立った母親とともにこの時期になると毎年、花見に行ったものである。
頂上付近の道路にそって行くと"桜の道"という立て札が見られる。
山に登ると9合目あたりのところから約1キロくらい平らな道が広がる。
この辺から見下ろせば、高層ビルが林立すしているヘウンデの町、対馬の方に広がっている爽快な海。
そして釜山の名物の一つであるグァンアンデギョ(廣安大橋)が一望に見渡せる。
頂上であってもあまり高くないので軽装で山行(サンヘン:山歩きのこと)する人々が目に入る。
車から降りて爽やかな空気を吸い込みながら風景を眺めていたところであった。
さほど遠くもないところから音楽が聞こえてくる。
いや~~~それは他ならぬサックスの音!。。
30年前の憧れがふと脳裏をかすめる。
妻を一人にして、私ひとりでそっと音がするところへ行ってみた。
ボンゴ車のそばでなんと粗末な身なりの男(Aさん)が伴奏にあわせてサックスを演奏している。
私は少し離れたところでじっと音楽をきいていた。
何曲かつづけてやっている。
演奏力は相当なものであった。
サックスを下ろして石に腰をかけ、たばこに火をつけていた彼のほうに足を向けた。
拍手とともに
「いや~すごい腕前ですね~。サックスをやりはじめて、もうだいぶ経つのでしょう」。
すると、Aさんは照れくさい笑いを浮かべながら、
「いいえ、2年前から始めたばかりです」
という答えを聞いて、腰が抜けるくらい驚いた。
2年ほどの短い時間でこれほど見事な演奏ができるのか。
「冗談ですよね~。いくら熱心に練習したといっても、こ
れほどまで上手になるなんてあり得ないことと思いますが」。。
Aさんは40代前半の男で、会社員ではなく自分の技術をもって事業をしているので
サックスを練習する時間は十分であるという。
「本当です。その代わりに一日、7時間ぐらいの練習をほぼ2年間やりつづけました。
自分なりには一所懸命にやったと思います。この場所で一人で」。。
今、私が振り替えれば当時2年になったという彼の実力は、10年も過ぎた人より優れていたといっても
過言ではないぼど並々ならないものであった。
ギターも弾いていると言っていたのだけれど、そんなこともあるのか、
人並みはずれた音楽的感覚があるのではかいかと思った。
タバコの火が消えていくころ、ふと私は頼んだ。
「(あはたに)サックスを教えてもらえますか」と。
Aさんが笑いながら平気で答えた。
「私はいつでもここにいるから楽器さえ求めたらいつでもけっこうです。教えてあげるのは勿論、礼金も遠慮します」。
翌日、そこへ行ったら彼がいた。
車から楽器を持ち出してくる私をみて、Aさんがぼんやりとした表情で微動だにせずじっと立っている。
「本当に買って来たんですか~~!!」
驚いた気配がありありと見える。
「牛の角も一気に抜け。腕のよい先生とすばらしい景色に恵まれた学びの場所。こんな機会がまたとありましょうか」との僕の言葉を聞き、
あきれ果てたといった顔をしながらタバコに火をつける。
「あなたのような人は初めてみた。2年間ここで数多くの人に会って
同じ話を繰り返してきたが、誰一人、あなたのような振る舞いはしなかったんです。
僕もインターネットを見ながら do、re、miから習ってきましたが、
誰かの助力なしに独学するなんてまさにいばらの道でした。
だが、あなたのような人には私が知っているすべてを教えてあげます」。 (パート1)
※牛の角も一気に抜け:物事は熱意のあるうちに一気にやれ、の意。(鉄は熱いうちに打て)。
섹소폰의 추억 (パート1)
그때가 중학교때 였는지,고등학교때 였는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텔레비젼 쇼프로에서 섹소폰이란 악기를 가지고 연주하고 있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섹소폰 소리는 들었던 적은 있어도 텔레비전화면에서
직접 본 것은 처음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섹소폰이라는 것이 다른 악기와 다르게 멋진 소리를 내는악기구나..”
언제쯤 되면 섹소폰을 배울수 있을까,,하고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 당시, 섹소폰이란 악기는 가격이 상당히 비싼 악기였기 때문에
일반의 악기상점에서도 팔고 있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이후 30여년이 지난 2009년,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안사람과 함께 집에서 가까운 황령산이란 곳에 처음으로 가 보았다.
나는 그다지 산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황령산이란 이름만은 알고 있었지만
부산에서는 꽤나 알려져 있는 산이라고 한다.
산입구에서 아스팔트도로의 양측은 모두 한 종류의 나무로만 심겨져 있다.
벛꽃나무다.
벛꽃이 한창 피는 4월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꽃구경하러 온다.
3년전,세상을 떠난 어머님과 함께 꽃피는 시기가 되면 매년 꽃구경하러 오곤 했다.
정상부근의 도로를 따라 가면 “벛꽃 길”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산에 오르면 9부능선쯤 되는 곳에서 약 4키로정도의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고층빌딩이 죽 늘어서 있는 동네,
대마도쪽으로 펼쳐지는 상쾌한 바다.그리고 부산의 명물중의 하나인
광안대교가 눈에 들어 온다.
정상이라고는 하지만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행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차에서 내려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이 멋진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엿다.
멀지 않는 곳에서 음악소리가 들려 온다.
아~~ 그것도 다름아닌 섹소폰소리다.
30여년 전에 동경했던 생각이 불현듯 떠 오른다.
안사람을 잠시 남겨두고 혼자서 살짝 소리나는 곳으로 가 보았다.
봉고차옆에서 왠 허술한 옷차림의 남자(A씨)가 섹소폰을 반주에 맞춰 연주하고 있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가만히 음악을 듣고 있었다.
몇곡인가 계속해서 연주하고 있다.
상당한 연주력이었다.
섹소폰을 내려 놓고 돌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던 그에게 다가 갔다.
박수와 함께
“야~ 실력이 대단합니다~~.
섹소폰을 하신지 오래 되셨겠네요“
그러자, A씨는 겸연쩍은 듯한 웃음을 띄우며 “아닙니다.2년전부터 시작했습니다“
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더욱 놀랐다.
2년정도의 짧은 기간에 이정도의 멋진 연주가 가능한 것인가??
“농담이지요? 아무리 열심히 연습한다고 해도 이 정도까지 숙달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A씨는 40대 초반의 남자로 회사원이 아니고 자기의 기술을 자지고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연습하는 시간은 충분하다고 한다.
“정말입니다. 그 대신 하루 7시간정도의 연습을 거의 2년동안 계속했습니다..
나 나름대로는 정말 열심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장소에서 혼자서..“
지금 내가 돌이켜 보면 당시 2년되었다는 그의 실력은 10년도
넘게 한 사람보다 훨씬 뛰어 났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예사롭지 않는 실력이었다.
기타도 만진다고 해서,,그 때문일까? 남들보다 뛰어난 음악적감각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담배를 다 피워 갈 무렵, 불쑥 내가 부탁했다.
“섹소폰을 내게 가르켜 줄 수 있느냐?”고
A씨는 웃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나는 언제나 여기에 있으므로
악기만 구하시면 언제든지 좋읍니다.
가르켜 드리는 것은 물론, 사례비도 받지 않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거기에 갔더니 그가 있었다.
차에서 악기를 꺼내 들고 오는 나를 보더니 A씨는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선채
꼼짝 않고 있다.
“정말로 사온 것입니까?”놀란 기색이 역역하게 보인다.
“소뿔도 단숨에 뺀다”솜씨좋은 선생과 멋진 경치에 둘러 쌓인 연습장. (쇠뿔도 단김에 빼라 원형)
이런 좋은 기회가 또 다시 있겠읍니까~!!“
라는 나의 말을 들으며 기가 막힌 듯한 표정으로 담배에 불을 붙인다.
“당신같은 사람은 처음 봤다. 2년동안 여기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
같은 말을 반복해 왔지만, 누구 한사람도 당신같은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인터넷을 보며 도,레,미부터 배웠지만 누구의 도움없이 독학한다는
것은 정말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같은 사람에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가르켜 드리겠습니다“ (パート1)
ヒマワリ育て _ 釜山サムライエッセイ0007
2014年2月に6号をお届けして以来ご無沙汰となっていた「釜山サムライ」さんの新エッセイが届きました。
第七号としてお届けします。
ーヒマワリ育てー
今までやったこともない働きを余儀なくさせられるはめになった。
理由をはなせば。。。
私はアパートで犬2匹とともに住んでいる。
1匹は15歳。もう1匹は昨年親友からもらってきたかわいい犬だ。
家の外で用便をするのを身につけさせようと外へつれて行ったのが災いの元だった。
最初のころ、朝、夕方二回の散歩はそれなりによかったが
すぐ嫌気が差した。
ふだん体を動かさない私は「そうだ、、嫌だけど、これも運動だと思って我慢しよう」と
自らを慰めながら出かけたものだ。それが、はや1年となった。
今から2ヶ月前のことだ。
その日もなにげなく歩いていたらアパートの花壇や道ばたに今まで見掛けなかった
植物がきれいに植えられている。
植物の名は知れなかったが、一見、雑草ではないことは分った。
「これなんていう植物かな」。通りかかる人に聞いてみたところヒマワリだという。
「あ~そうですか。ヒマワリですか」。
このアパートに12年住んでいるがこんな風景ははじめて見たので
「誰がこれを植えたのかな。。」ちょっと首を傾げてはみたが、それはそれでおしまいであった。
そして、なにげなくその道ばたを通りすぎた。
ややあって苦労の時が迫ってきた。
他の日とおなじく犬をつれて散歩に出た。
あいにく前の晩、風が強かったのか、いくつのヒマワリの幹が折れているのが目に入った。
哀れな気持ちで周りの枝を拾って支えをして縛ってやった。
次の散歩からはヒマワリの幹のほうに自然と目が行くようになった。
腰がおれたやつらがこれからまともに生きていけるのかと思ったが
幸いによく延びていた。
日が経つにつれ背がぐんぐん延びるとともに
太ってきた幹がうつむいていた。
「このまま放置するときっと倒れるはずだ」と気づいて
散歩するたびに何本かずつ支えの棒を縛ってやった。
次の日も、また次の日も。。
支えの作業がほどんど終わったと思って
腰を伸ばしてこのかわいいやつらを微笑ましく見る。
しかし、これも束の間の喜びであつた。
その後また何日かが過ぎると今度は幼いころ立ててやった支えの丈が
短くなってしまった。
「あ~これではだめだ。もっと丈夫で長い支えを立てなければ。。」
手頃な支えの枝を再び捜しはじめた。
瞬間、ふと「なんで俺がこんなことをしなきゃならないんだ」。
ぶつぶつと悪態をつきながら汗にぬれた目で花壇の中を
きょろきょろ見回わす。
つれの犬はもう眼中にはなかった。
誰が種を蒔いたかは今もわからない。
自分が好きでやったことは最後までやってやったらよかったのに。
残念な人だ。
こうして、時は流れ、苦労のかいがあった。
ヒマワリが黄色い顔を差し出すのをみたら気持ちはよかったが
私の支えをとりつける作業は続いた。
今では延びきった背の高いのは2.5メートル。小さいのは小さい。
さまざまだ。
数えてみたらおよそ150本あまり。
決して少なくない数だった。
今年の夏、思いがけなかった出来事であったが楽しみも感じたりもした。
炎天下で作物を育てる農夫の骨折りが思い浮かぶ。
農作物を自分の子育てのようにするのがいかほどしんどいことか。。と
他人が蒔いた種と、それに後始末をつけた私。
いきなり「生みの子より育ての子」という諺が思いつき、
苦笑いがこぼれる。
私に任せられたヒマワリ育てもつつがなくやりし終えたし、
今年の秋は、わが手で直々にコスモスでも育ててみようかな~~。
「해바라기-키우기」
지금까지 해 보지 않았던 일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다.
사정을 이야기하면...
나는 아파트에서 개 2마리와 함께 살고있다.。
1마리는 15살이고 또 한 마리는 작년 친구에게서 얻어 온
1년6개월 된 귀여운 개다.
집밖에서 용변하는 것을 몸에 익히도록 밖에 데리고 나간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에는 아침, 저녁 2번의 산보는 나름대로 좋았지만
금방 실증이 났다.
평소 몸을 움직이지 않는 나는 “그래,,, 싫지마는 이것도 운동이다 생각하고 참자,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밖으로 나가곤 했었다. 그것이 1년이 되었다.
지금부터 2개월 전의 일이다. 그날도 무심코 걷고 있는데 아파트 화단이나 길가에서
지금까지 본적이 없는 식물이 예쁘게 자라고 있었다.
식물의 이름은 알수 없었지만, 언듯 보기에도 잡초가 아닌 것은 알았다.
“ 이게,무슨 식물이지?” 길을 지나는 사람에게 물어 봤더니 해바라기라고 한다.
“아~그렇습니까. 해바라기네요”
이 아파트에서 12년을 살고 있지만 이런 풍경은 처음 보았기 때문에
“누가 이것을 심었지?,,, 잠깐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길을 지나 다녔다.
얼마쯤 있다가 고생의 시간이 닥쳐 왔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개를 데리고 산보를 나갔다.
마침 전날 밤에 바람이 강했던지 해바라기 몇그루의 줄기가 꺾여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 왔다.
불쌍한 마음에 주위에 있는 나무가지를 주워 지지대로 묶어 주었다.
다음 산보부터는 줄기쪽으로 자연히 눈이 가게 되었다.
허리가 부러진 녀석들이 앞으로 잘 살아 갈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잘 자라고 있었다.
날이 지남에 따라 키가 쭉쭉 자람과 함께
굵어진 가지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대로 방치하면 틀림없이 쓰러질 것이다” 라고 생각이 들어
산보할 때 마다 몇 그루씩 지지대를 묶어 주었다.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지지대작업이 거의 끝났다고 생각하여
허리를 펴고 이 귀여운 놈들을 흐믓하게 바라 보았다.
그러나, 이것도 잠깐의 즐거움이었다
그 이후, 또 몇일인가 지나자 이번에는 어릴 적에 세워 주었던 지지대의 길이가
짧게 되어 버렸다.
“아~이래서는 안된다” 좀 더 튼튼하고 긴 지지대를 세워 줘야지,,
적당한 지지대 가지를 다시 찿기 시작했다.
순간, 불쑥 “왜 내가 이런 일을 해야만 되나”
투덜거리며 욕을 하면서, 땀에 젖은 눈으로 화단속을
두리번거리며 둘러 본다.
데리고 간 개는 이미 안중에는 없었다.
누가 씨를 뿌렸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자신이 좋아서 한 것은
마지막까지 하면 좋았을텐데.
유감스러운 사람이다.
이렇듯 시간은 지나고,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해바라기가 노란 얼굴을 내민 것을 보니 기분은 좋았지만
지지대를 세우는 일은 계속되었다.
지금은 다 자라서 키가 높은 것은 2.5미터, 작은 것은 작다.
가지각색이다.
수를 세어 봤더니 약 150그루 정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올해 여름, 생각하지도 못하였던 사건이었지만 즐거움도, 느낀 점도 있었다.
땡볕아래에서 작물을 키우는 농부의 수고가 떠오른다.
농작물을 자신의 아이키우는 것처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 것인가.
남이 뿌린 씨와, 뒷처리를 한 나.
갑자기 “나은 자식보다 키운 자식이 정이 깊다” 라는
말이 생각나서 쓴 웃음이 나왔다.
나에게 내맡겨진 해바라기-키우기도 멋지게 해냈으니,,
올해 가을에는 내손으로 직접 코스모스-라도 키워 볼까,,,
屋久島紀行
ストーリーツアー(会社)のヂョ代表引率のもと、17人ほどが参加してのパック旅行である。
娘と二人で参加。(10時間のトレッキングは妻にはちょっときつい)。
台風12号(ジョンダリ)が日本にやってきている時期だった。
この台風は、普通の台風とはちがい、反時計回りに回って
屋久島を旋回するように回転して上海のほうへ抜けていった。
7月29日(日)。
インチョンを発って鹿児島へ。指宿温泉(岩崎温泉)で1泊。
砂風呂(砂の中に全身を埋める)がよかった。4階にある「空中温泉」というのもよかった。
しかし、29日夜の露天風呂で、雨に打たれながらはいった風呂が最高だった。
露天風呂の魅力はやはり、雨と雪だと改めて認識した次第だった。
30日(月)。
台風予報が気になる中、指宿港へ向かう。
船がでるかどうかもわからないけど、いったん港までは行ってみようという
ヂョ代表の引率のもと、全員マイクロバスにおさまる。
港で待っていると、高速艇がことばそのままに「飛ぶ」ように現れた。
猫バスかと思ってしまうほどだ。ついている。船は出るようだ。
屋久島をバスで1周したあと太鼓岩までの3時間コースを、
翌日の縄文杉トレッキングに備えて予行演習。
名物の雨はなかった。太鼓岩までのコースはそれなりにきつかったが、
無事、歩ききった。なんとかなりそうだ。
31日(火)。
この日がメイン。縄文杉探訪の日。
朝4時半起床。5時に宿を出発。1時間くらいマイクロバスに揺られて
縄文杉探訪の出発地点まで行く。
宿の用意してくれた朝飯と昼飯を持って。
朝はサンドイッチ、昼はおにぎり2つとソーセージなどのつまった弁当。
台風が1度消滅したあとまた復活し、ちょうど屋久島の周りを回るような格好で徘徊しているという。
台風がなくても雨が名物なのだから、かなりの雨は覚悟しての出発となった。
宿を出るときは雨はなかったが、探訪地点に着いたときにはかなりの雨となっていた。
雨具を着て、傘を用意してリュックを背負いなおす。
出発地点から数時間はトロッコの鉄路を歩く。
雨は時折強くなったが、止むこともあり、雨具は脱ぐことになった。
ただ、昼飯の時間にものすごい雨となり、
傘をさして立ったままおにぎりを食べた。
女性らは、雨よけのシートの下。男たちは傘をさして立ったまま。
しかたがない。
朝6時に出発して、11時半ごろになっていたから、すでに5時間半歩きづめ。
横になれないのがちょっと苦しかったが、おにぎりを食ったらまた力が湧いてきた。
さらに3時間ほど歩く。トロッコ路は平坦であまり疲れはなかったが
トロッコ路が終わってからはかなりきつい急坂。
昼飯後の数時間は登りづめの登山路なので、がんばりどころだ。
全員なんとか落伍せずガイドさんの後についてがんばってきている。
俺もがんばってついていった。
雨の中に縄文杉は立っていた。
白光杉。(びゃっこうすぎ)。
これが筆者が縄文杉を見た瞬間に思いついたことばだ。
7200歳という。ほぼ永遠。
想像を絶する時間を生きてきた杉。
こんな長い年月を生き抜いてきた生物はほかにあるだろうか。
「永遠」を目の当たりにしておのずから「祈り」が発生する。
傘をさしながらの見物となったけれど、
七千歳の杉さんは、白い光を発光するように、
物言うことなくあくまでもそこに立ち尽くす。
ご神木の放つメッセージを各自、それぞれの心の中に大切にしまいこみ、下山。
帰りは三分の二くらいの時間だったか。
出発地点に着いたのが4時半ごろだったかと記憶する。
10時間を越えるトレッキング路程だった。
ヂョ代表の言うには、70歳を越えた女性も歩きぬいたという。
世の中には、すごい人がいるものだ。
上には上があり下には下がある。
8月1日(水)。
屋久島飛行場から国内線で鹿児島空港へ。
さらに国際線に乗り換えてインチョンへ。3時ごろ到着。
思い出深い縄文杉紀行だった。
また行きたい。
途中の光景。
『もののけ姫』のモチーフがこの屋久島である。
『もののけ姫』からそのまま出てきたような光景がえんえんと続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