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순옹주
혜순옹주
惠順翁主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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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의 옹주 | |
이름 | |
휘 | 철환(鐵環) |
신상정보 | |
출생일 | 1512년 1월 25일(음력) |
사망일 | 1583년 12월 4일(음력) | (71세)
부친 | 중종 |
모친 | 경빈 박씨 |
배우자 | 광천위(光川尉) 김인경(金仁慶) |
자녀 | 양자 1남
김호수(金虎秀) |
능묘 | 혜순옹주묘(惠順翁主墓)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신복리 산293-1 |
혜순옹주(惠順翁主, 1512년 2월 22일(음력 1월 25일) ~ 1584년 1월 16일(1583년 음력 12월 4일))은 조선의 왕족으로, 중종의 서장녀이며, 생모는 경빈 박씨이다. 이름은 철환(鐵環)이다.
생애
[편집]1512년(중종 7년) 1월 25일, 중종(中宗)과 당시 종2품 숙의(淑儀)였던 경빈 박씨(敬嬪 朴氏)의 1남 2녀중 장녀로 태어났다.
1522년(중종 17년) 김헌윤의 아들 광천위(光川尉) 김인경(金仁慶)에게 출가하였다. 1527년(중종 22년), 김안로와 그 아들 김희 등의 꾸민 작서의 변에 연루되어 혜순옹주의 계집종들이 추국을 받았다.
혜순옹주를 모시는 계집종 모이강(毛伊姜)·자귀(者歸)·귀인(貴仁),
경빈(敬嬪)의 방자(房子)와 비자(婢子)인 사비(四非)·춘월(春月)·덕복(德福) 등에게
인형을 만들어 참형을 시행한 일과 쥐를 지진 일에 대해 추문하면서
한 차례 형신을 가했으나 자복하지 않았다.— 《중종실록》 58권,
중종 22년(1527년 명 가정(嘉靖) 6년) 4월 15일 (신유)
이 사건으로 혜순옹주의 어머니인 경빈 박씨와 오빠인 복성군은 서인이 되어 쫓겨났다. 1533년(중종 28년)에는 남편 김인경 또한 같은 사건에 연좌되어 변방으로 장배(杖配)되었으며, 혜순옹주도 서인(庶人)으로 폐출되어 경상도 상주로 유배되었다. 이 때 어머니 경빈과 오빠 복성군은 사사되었다.[1] 이후 1541년 남편과 함께 직첩을 돌려받았다.[2]
1583년(선조 16년) 11월 20일, 남편 김인경과 사별하였고, 김인경이 죽은지 보름이 지난 12월 4일 사망하였다. 혜순옹주의 무덤은 현재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신복리에 위치해 있다.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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