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공주
정순공주
貞順公主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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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의 공주 | |
이름 | |
별호 | 청평군궁주(淸平君宮主) 정순궁주(貞順宮主) 정신궁주(定愼宮主) |
신상정보 | |
출생일 | 1385년 |
사망일 | 1460년 9월 18일(양력) |
부친 | 태종 |
모친 | 원경왕후 민씨 |
배우자 | 청평부원군(淸平府院君) 이백강(李伯剛) |
자녀 | 1녀
이계린의 처 이씨(李氏) |
능묘 | 이백강 · 정순공주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용정리 산209-4 |
정순공주(貞順公主, 1385년 ~ 1460년 9월 18일(음력 8월 25일))는 조선의 공주로, 태종의 장녀이자 적장녀이다. 어머니는 원경왕후이다.
생애
[편집]1385년(우왕 11년),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태종)과 부인 민씨(원경왕후)의 장녀로 태어났다.
1399년(정종 1년) 이거이의 넷째 아들인 청평위(淸平尉) 이백강(李伯剛)과 혼인하였다. 1401년(태종 1년), 아버지 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하면서 정순공주(貞順公主)에 봉해졌다.
1404년(태종 4년), 시아버지인 이거이가 모반을 품었다 하여 아들 이저와 함께 태종에 의해 서인으로 강등되었다.[1] 이거이의 두 아들이 왕실의 부마가 되면서[주 1] 세력이 커질 것을 경계하였기 때문이다. 이때 태종은 사위인 이백강 또한 서인으로 삼고 동성(童城, 경기도 김포)에 안치하였다가 통주(通州)로 이배하였는데, 신하들은 이백강과 정순공주를 이혼시킬 것을 청하기도 하였다.[2]
이후 종친과 공신들이 이거이 부자를 처형할 것을 청하자 태종은 이거이와 이저가 왕자의 난 당시 큰 공을 세웠고, 이거이의 또다른 아들인 이백강이 정순공주의 부마이기 때문에 이들을 차마 죽일 수 없다며 거절하였다.[3]
1405년(태종 5년), 태종은 이백강의 직첩을 돌려주고 서울로 올라와 살게 하였다.[4] 1451년(문종 1년), 이백강과 사별하였다.
1458년(세조 4년), 충청도 온양의 온천으로 목욕하러 가자 세조는 정순공주에게 음식을 지급할 것을 명하였다. 이때 온양군사 조매가 정순공주를 대접하는 일을 소홀히 하자 세조는 노하여 조매를 추국하였다.[5]
1460년(세조 6년) 8월 25일 사망하였다. 정순공주가 세상을 떠나자 세조가 쌀·콩 아울러 70석과 포(布) 50필, 종이 1백권을 부의하였다.[6]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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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편집]- ↑ 《태종실록》 8권, 태종 4년(1404년 명 영락(永樂) 2년) 10월 24일 (임진)
이거이 · 이저 · 이백강 등을 폐하여 서인으로 삼고 외방에 안치하다 - ↑ 《태종실록》 8권, 태종 4년(1404년 명 영락(永樂) 2년) 10월 24일 (임진)
이거이 · 이저의 자손을 금고하고, 친인척들도 아울러 치죄하다 - ↑ 《태종실록》 8권, 태종 4년(1404년 명 영락(永樂) 2년) 10월 18일 (병술)
종친 · 공신 등이 여러 차례 이거이 부자의 죄를 청하다 - ↑ 《태종실록》 10권, 태종 5년(1405년 명 영락(永樂) 3년) 10월 2일 (갑자)
이백강의 직첩을 돌려주도록 명하다 - ↑ 《세조실록》 13권, 세조 4년(1458년 명 천순(天順) 2년) 8월 5일 (경신)
온양 군사 조매가 정순공주를 박대한 일을 추국하게 하다 - ↑ 《세조실록》 21권, 세조 6년(1460년 명 천순(天順) 4년) 8월 25일 (무진)
정순공주가 졸하여 부의하다 - ↑ 《원경왕후 헌릉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