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어머니가 마치 수건처럼 생긴 무언가를 깨끗하게 다듬어 솥에 넣는 것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더니 어머니가 미지의 검은색 덩어리를 들어 올려 보여주셨다. 곰탕을 끓이고 있으셨으니 소 내장 부속물일 것이라 추측은 했지만 도무지 먹거리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어느 부위인지 알 리 만무했다.
그것의 정체가 소의 4개 위 중에서 첫번째 위인 ‘양깃머리’(양)라는 것을 어른이 돼서야 알게 됐다. 양 손질은 꽤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안쪽의 기름기를 떼어내고 데치는데, 어른들은 ‘끓는 물에 튀긴다’라는 표현을 쓴다. 물에 살짝 담그거나 끓는 물을 끼얹기도 한다. 과하게 삶지 않아야 검은색 돌기 부분을 긁어내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물론 검은 막을 있는 그대로 요리하는 경우도 많다.
소는 반추동물이다. ‘반추’(反芻)는 ‘한번 삼킨 풀을 되새김하여 씹는다’는 의미다. 소는 인간과는 다른 4개의 위를 갖고 있어 소화 과정 또한 다르다. 소의 위는 전체 체중의 약 28%를 차지할 정도로 크다. 소는 위에서 풀과 같은 섬유소 탄수화물은 뭉치고 그걸 입으로 보내 되새김한 뒤 다시 위로 보낸다. 그러고 나면 잘게 분해되는 소화 과정이 진행된다. 마치 자동차의 엔진이 작동하듯 각각의 위는 고유의 기능을 하며 에너지를 생성시키는 생육의 핵심 역할을 한다.
조선시대 의학서 ‘동의보감’에는 ‘소의 밥통을 우두(牛肚)라고 하는데, 민간에서는 양이라고도 한다. 양은 오장을 보하고 비위를 도와주며 소갈(갈증)을 멎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소의 위는 무르게 푹 쪄서 보양식으로 먹어왔다. 궁중 의례 음식 기록을 보면 소의 내장류 사용이 왕왕 나온다. 당시 내장은 손질이 까다롭고 저장성이 좋지 않아 귀하게 쓰였던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은 발달한 사육·유통 환경에서 생산되는 고기와 부속물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보니, 내장을 재료 일부로 쓴 외식 상품이 다채롭게 등장하고 있다.
특히 성공한 해장국 브랜드의 면면을 보면 내장 쓰임에 상당한 노하우를 장착한 창업자가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내장은 국물의 깊은 맛을 내는 기본 재료가 되고, 공급자 입장에서는 원육 사용을 절감할 수도 있어 여러모로 든든한 존재다. 물론 맛도 특별하다. 살코기와는 다른 식감의 즐거움을 주어 내장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상당수다. 소의 위는 내장육의 핵심 재료로, 되새김 소화로 평생 쉼 없이 일을 해온 역할을 생각하면 억셀 것 같지만 의외로 부드럽고 쫄깃하다. 원재료의 신선함을 담은 백탕류나 얼큰한 한 그릇으로 시원함을 완성하는 양곰탕 맛집을 추천해본다.
배꼽집 본점
서울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 소 발골부터 유통, 한우 전문점에 제공하는 부위 선별까지 박규환 대표가 모든 걸 책임지는 소고기 전문 맛집. 양질의 소고기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진 만큼 탕의 맛과 깊이도 남다르다. 얼큰한 양곰탕에는 소의 양이 풍성하고 녹진한 감칠맛이 폭발한다.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54길 17 사보이시티DMC 중앙계단 지상2층 210·206호/(02)304-9293/양곰탕 1만1천원, 천마양곰탕 1만8천원. 인스타그램 @bk023049293
곰바위 본점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양대창구이 노포 맛집. 한끼 식사용으로 홍탕과 백탕이 있다. 다양한 내장류와 갈빗대가 들어간 얼큰한 홍탕도 매력적이지만 딱 한 그릇을 꼽으라면 단연 백탕. 맑은 국물에 양을 비롯한 내장, 고기, 갈빗대 및 굵은 당면 등이 푸짐하다. 대접으로도 손색없는 탕.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115길 10/0507-1404-0068/곰바위 백탕 2만4천원, 곰바위 홍탕 1만9천원. 인스타그램 @gombawie
소나무풍경
사골곰탕으로 3대를 이어온 맛집.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으로, 아름다운 나무로 꾸민 정원이 기분 좋게 한다. 어떤 메뉴를 주문해도 개인별 반찬이 나오며 위생 관리가 철저하다. 뽀얗게 잘 손질된 양과 손으로 찢은 양짓살을 건져 겨자 소스에 찍어 먹고, 곰탕 국물에 찰진 밥을 말면 ‘행복 완성’이다.
대전 서구 괴정로116번길 42/(042)525-9925/양곰탕 1만2천원. 인스타그램 @sonamuview
이윤화 다이어리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