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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와 뉴질랜드의 고유종인 ‘발톱벌레’(Velvet worm)의 모습. 무척추동물은 전체 동물 종의 95%를 차지할 정도로 생태계를 떠받치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호주와 뉴질랜드의 고유종인 ‘발톱벌레’(Velvet worm)의 모습. 무척추동물은 전체 동물 종의 95%를 차지할 정도로 생태계를 떠받치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유럽인들이 온 뒤로 호주에서 곤충을 비롯한 육지 무척추동물 9111종이 멸종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 2024년에는 매주 1~3종이 멸종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식물의 수분 활동이나 유기물 분해 등을 도맡는 무척추동물은 전체 생태계를 떠받치는 구실을 하지만, 포유류나 조류 같은 척추동물들과 달리 대체로 인간의 관심과 인식 밖에 있다.

존 보이나르스키 호주 찰스다윈대 교수가 이끄는 호주 과학자 10명으로 이뤄진 연구팀은 최근 ‘케임브리지 프리즘: 멸종’에 실은 논문에서 “유럽인이 호주 대륙에 온 1788년 이후로 호주에서 얼마나 많은 비해양 무척추동물 종이 사라졌는지 추정해본 결과, 236년 동안 전체 9111종이 멸종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미 제시된 여러 멸종률들을 서로 비교해보는 방식으로 멸종률을 따져봤는데, 추정치는 최소 1465종에서 최대 5만6828종에 이르렀다.

곤충부터 거미, 연체동물 등에 이르기까지 전체 동물 종의 절대다수가 무척추동물인데, 그 종류가 너무 많고 다양해 인간은 어떤 무척추동물이 있는지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때문에 기후변화 등 인간의 영향으로 무척추동물 또한 대규모 멸종하고 있는데도 인간이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조용한 멸종’에 대한 우려가 높았다. 예컨대 1788년 이후 호주에서 멸종했다고 공식 집계된 생물 97종 가운데 10종만이 무척추동물이며, 그중 법으로 규정한 멸종 사례는 ‘페더 호수 지렁이’(Lake Pedder earthworn) 단 한 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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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이후 호주에서 멸종했다는 사실이 법적으로 규정된 유일한 무척추동물 종 ‘페더 호수 지렁이’(Lake Pedder earthworn)의 남겨진 표본. 위키미디어 코먼스
1788년 이후 호주에서 멸종했다는 사실이 법적으로 규정된 유일한 무척추동물 종 ‘페더 호수 지렁이’(Lake Pedder earthworn)의 남겨진 표본. 위키미디어 코먼스

따라서 이번 연구는 그간 인간이 과소평가해온 무척추동물의 멸종에 경각심을 일깨운다. 연구팀은 무척추동물의 멸종률이 인간의 인구 규모의 성장에 영향을 받는다고 가정할 때, 2024년 호주에서 멸종되는 무척추동물의 종수는 1788~2024년 모든 멸종 수의 1.62%라고 추정했다. 2024년 한해 39~148종, 매주 1~3종의 멸종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다른 생물종과 마찬가지로 무척추동물 역시 기후변화, 서식지 상실, 토지 개간, 수로 오염, 살충제 오용, 외래 종 침입 등으로 멸종 위협에 놓여있다. 보이나르스키 교수는 “기후변화에 의해 변형된 환경은 기존 멸종 위협의 영향을 복합적으로 가중시키며 멸종률을 높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생물다양성과 관련해 가장 큰 국제협약인 ‘생물다양성 협약’(CBD)은 멸종 방지 활동을 ‘알려진’ 종들에 대한 조처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어느 종의 “마지막 개체가 죽었다는 데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고”, “역사적으로 알려지거나 가능성 있는 서식지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수행된 뒤에야” ‘멸종’으로 규정한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설명되지 않은 종이나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은 종의 멸종을 막기 위한 책임을 회피한다”고 비판했다. 무척추동물에 대한 인간의 무지가 이들의 멸종을 방치하는 핑계가 되어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연구팀은 “대중의 무관심 때문에 정부는 위기에 처한 무척추동물의 보존에 더 적게 투자하고 있다”며, 무척추동물 종의 목록을 정리하고 더 특화된 보존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예컨대 호주 로드하우섬의 경우 섬의 고유종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류를 퇴치하고 있는데, 이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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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호주 웨스턴시드니대학 보존과학자 케이트 엄버스 박사는 영국 매체 가디언에 “무척추동물은 지구상 동물 종의 95%를 차지하며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며, “그렇지만 이름을 붙이기도 전에 멸종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영국 시인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의 시구를 자신들의 연구를 담은 이번 논문의 제목으로 삼았다.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 쾅 소리가 아니라 흐느낌으로”.

최원형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