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의 지위를 교육자료로 하향하는 취지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향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이런 내용이 확정되지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내년 3월 도입 예정인 인공지능 교과서의 운명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국회 법사위는 17일 전체회의를 열어 국회 교육위원회가 11월28일 통과시킨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재석 의원 18명 가운데 11명이 찬성했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는 인공지능 교과서를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로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규정한 교과서로서의 지위 대신 교재로 낮춘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각 학교는 의무 도입이 아니라 학교장 재량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법사위에서 “교육 평등 측면에서 인공지능 교과서가 참고서로 격하되면 어려운 지역 아이들일수록 새로운 교육에 대한 기회를 박탈당해 교육 격차가 커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야당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김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새 학년을 고작 3개월 앞두고 졸속으로 추진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며 “현장의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고 급작스럽게 할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개정안이 법사위 문턱을 넘자 교육부는 “법안이 의결돼 유감으로 생각한다”며 “아직 본회의가 남았으므로 본회의 전까지 국회와 더욱 소통·설득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전교조는 이날 성명서를 내어 “국회가 본회의에서 조속히 해당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10~16일 교사 262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내어, 응답 교사 가운데 98.5%가 ‘내년 도입 시 인공지능 교과서의 원활한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더욱이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앞날을 장담하기 쉽지 않다.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는데, 탄핵 정국에서 한덕수 권한대행이 기존 정부 입장을 유지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아울러 여야가 대립한 고교무상교육 국비 지원 3년 연장을 담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도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지만, 비슷한 신세다. 재원 절반가량을 중앙정부가 부담했는데 올해 말 일몰될 상황에서, 민주당은 3년 더 연장하자고 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정부 부담을 15%로 낮춰 연장하자고 맞섰다. 민주당 안대로 상임위를 통과하자,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예상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나 인공지능 교과서 발행사 모두 혼란스러운 상태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수학 교사는 “다음주까지는 인공지능 교과서를 채택하는 일정”이라며 “도입 3개월도 안 남기고 지위가 어떻게 될지 모르다 보니 교사들도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교과서 발행사 관계자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분위기였는데, 권한대행 체제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신소윤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