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완벽한 자유가 존재하는 생추어리는 없다. 생추어리는 정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닭·소·돼지 등 농장동물은 보통 태어난 지 30일, 6개월, 2년 만에 ‘고기’가 되어 삶을 마감한다. 만약 동물이 사람에게 먹히거나 이용되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지난 10월 출간된 책 ‘동물의 자리’는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에서 세워진 국내 생크추어리 4곳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생크추어리(Sancturay)는 인간에게 학대·방치되거나 산업적으로 이용되던 동물, 자연에서 생존이 어려운 야생동물을 포용해 통상 ‘동물의 피난처·안식처’라고 번역된다. 그러나 그 역할과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기자·르포작가가 찾은 국내 생크추어리 4곳
국내에서 생크추어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시점은 지난 2020년 한 양돈농가에서 살아나온 돼지 ‘새벽’의 보금자리가 만들어진 것과 맞물린다. 이후 몇 년 새 흔히 ‘젖소’로 인식되는 홀스타인종 소, 웅담 채취 산업을 위해 길러지던 반달가슴곰, 경마·승마에 이용되다 갈 곳을 잃은 말을 보살피는 곳이 잇따라 생겨났다. 생크추어리란 도대체 어떤 공간인가. 비슷한 질문을 품고 생크추어리를 찾아간 사람들은 시사주간지 기자들과 르포작가였다. 이들은 왜 ‘동물의 집’을 찾아갔을까. 지난달 24일 서울 마포구 한 모임 장소에서 책의 지은이인 김다은·신선영 시사인 기자, 정윤영 르포작가를 만났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기록 노동자’라는 점이다. “‘새벽이 생추어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가보고 싶었어요. 동물복지에 큰 사건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정윤영 작가는 기록이 본업인 사람답게, 생크추어리에 대해 쓰고 싶었다. 혼자서는 엄두가 안 나, 이전에 해양환경단체 활동을 하다가 만난 김다은 기자 옆구리를 찔렀다. 김 기자가 2022년 12월 신선영 사진기자에게 동참을 권하며 ‘생크추어리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두 기자는 개농장 불법 도살 현장, 소 럼피스킨 병 살처분 현장 등을 함께 취재한 바 있다. 신 기자는 “취재 현장의 동물을 보고 있자니 이 동물과 반려동물이 뭐가 다를까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사실 이들은 모두 유기견이나 길고양이를 입양해 모시고 사는 ‘집사’이기도 하다.
그렇게 세 사람은 2023년 초부터 강원 인제의 ‘달 뜨는 보금자리’, 화천의 ‘곰 보금자리’, 제주 ‘곶자왈 말 보호센터 마레숲’, 국내 모처의 ‘새벽이 생추어리’를 여러 번 찾았다. 두 기자는 휴가를 내거나 휴일을 헐어 길게는 4박 5일씩 이곳을 찾았고, 정 작가는 거의 매달 한 차례씩 소 생크추어리를 찾았다.
“취재하고 오면 글 쓰는 게 즐겁고, 소들 얼굴이 아른아른했어요. 동물과 만나는 방식이 살처분, 도살장, 개농장과 같이 ‘잔인한 방식’만 있지는 않구나. 동물과 마주하는 게 행복한 경험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로 작업했어요.” 정 작가는 소 생크추어리를 거듭 찾아간 뒤 “보금자리는 인간과 소들이 함께 만든 곳이었고, 서로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들이 함께 연대하는 공간이었다”고 책에 적었다.
생크추어리는 천국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생크추어리를 마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곳으로 포장하지는 않는다. 김 기자는 “생추어리는 현재 동물 운동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지만 아직 완성된 공간은 아니”라고 했다. 네 곳의 생추어리는 설립 목표나 운영 주체, 방식이 천차만별이다. 동물을 좋아해서 개인이 만든 곳부터 수의사·사육사 등 전문가가 참여하는 곳, 급진적인 동물권을 주장하는 곳, 지역과의 협업으로 운영을 확장하는 곳까지 다양하다. 어느 곳에서는 ‘구조’라는 말을 지양하고, 다른 곳에서는 동물을 헤아릴 때 ‘마리’ 대신 목숨을 의미하는 ‘명’(命)을 사용한다. 때문에 김 기자는 “한국사회에서 생추어리는 정답이 아니라 아직 질문”이라고 썼다.
이런 혼란은 지은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생크추어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지만, 부족한 인프라나 공간의 빈약함을 담았을 때 오해는 없을지 걱정이 됐다. ‘생추어리’란 단어를 그대로 쓸 것인가 말 것인가도 고민이었다. 외래어 표준 표기는 ‘생크추어리’지만 대중에게 친근한 것은 ‘생추어리’였다. 책은 생추어리를 택했다. 동물원과 생크추어리의 차이는 뭔지, 동물보호소와는 뭐가 다른지도 ‘단골 질문’이었다. 작가들이 마침내 내린 정의는 “동물이 주인인 공간이며 인간에 의해 동물이 훼손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주로 사람의 일을 기록하는 이들에게 동물과 함께 하는 작업은 뭐가 달랐을까. 김 기자와 정 작가는 말이 통하지 않는 ‘섣부른 이해’를 경계했다. 김 기자는 “동물의 감정을 추측하려고 하지 않았”고, 정 작가는 “동물의 행동에 인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감정 이입하는 것에 주의”했다. 그런데도 이들은 한 살 한 살 나이 먹어가는 돼지의 얼굴을 지켜보는 것에, 긴장을 풀고 바닥에 철퍼덕 누워 자는 말들을 지켜보는 일의 특별함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했다.
“무엇이 동물을 위한 방식일까”
특히 사진으로 생크추어리를 담아내야 했던 신 기자는 동물이 촬영을 ‘허락’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철창 안의 곰을 제대로 촬영하는 일이나 운영 방침상 동물에게 거리를 둬야 하는 경우는 더 까다롭긴 했지만, 긴 기다림 끝에 그는 생크추어리를 찾아온 39살 ‘할머니 야생말’의 얼굴과 두 마리의 곰이 합사 과정에서 서로에게 유대감을 표현하는 ‘곰들의 시간’을 촬영할 수 있었다.
왜 이렇게 인간은 동물과 관계 맺기를 원하는 것일까. 정 작가는 그건 동물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동물에 대한 인간의) 교감 욕구와 호기심이 궁금했는데, 그건 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중요한 것은 김 기자 말마따나 “우리가 동물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떻게 ’동물을 위한 방식’으로 바꿀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지숙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