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비 윤씨
희비 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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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 |
이름 | |
시호 | 희비 (禧妃) |
신상정보 | |
출생일 | 미상 |
출생지 | 고려 |
사망일 | 1380년 |
사망지 | 고려 |
국적 | 고려 |
왕조 | 고려 왕조 |
부친 | 윤계종 |
모친 | 여흥 민씨 (민적의 딸) |
배우자 | 충혜왕 |
자녀 | 충정왕 |
능묘 | 미상 |
희비 윤씨(禧妃 尹氏, ? ~ 1380년)는 고려의 제28대 왕 충혜왕의 제2비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생애
[편집]가계
[편집]증조부는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 윤순(尹純)이시며, 조부는 첨의정승(僉議政丞) 윤보(尹珤)이며, 부친은 찬성사(贊成事) 윤계종(尹繼宗)이고, 외조부는 판밀직(判密直) 민적(閔頔)이다. [ 趙從耘(1607∼1683)의 氏族源流 坡平尹氏 ]
왕비 책봉
[편집]1348년(충목왕 4년) 음력 12월 충목왕(忠穆王)이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그녀의 아들 충정왕(忠定王)이 즉위하였다.
왕비 시절
[편집]그녀의 일족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1]. 또 그녀의 외숙부인 민환(閔渙)도 권세를 믿고 그 횡포가 매우 심했다고 한다[2][3].
1349년(충정왕 1년 음력 9월 정사일 그녀를 위한 부를 세우고 그 이름을 경순부(慶順府)라고 하고, 승(丞)과 주부(注簿) 각 1명과 사인(舍人) 2명을 두었다.
1352년(공민왕 1년)에 충정왕이 공민왕에게 선위하고 강화도로 물러나자 희비는 근심 걱정으로 며칠을 울부짖으며 지냈고, 결국 공민왕에게 허락을 받아 강화도로 가 며칠동안 머무르며 충정왕을 직접 만나고 돌아왔다[4].
1352년(공민왕 1년) 음력 3월에 충정왕은 강화도에서 독살당했다[5].
사후
[편집]호는 희비(禧妃)이다. 능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는 것이 없어 알 수 없으며, 남편 충혜왕과의 사이에서 아들 1명(충정왕)만을 낳았다.
그녀의 사후 왕실에서는 그녀에 대한 제사를 지내지 않았으나, 1391년(공양왕 3년) 음력 1월 공양왕이 예조(禮曹)의 건의를 받아들여 선대 왕후의 예에 맞춰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6].
한편 그녀의 외숙부가 되는 민변(閔抃)은 아들 민제(閔霽)를 낳았다. 민제는 희비의 외사촌이 되는데, 민제는 바로 조선 태종(太宗)의 정비인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 閔氏)의 아버지이다[7].
가족 관계
[편집]- 아버지 : 윤계종(尹繼宗, ?~1346)
- 어머니 : 여흥민씨(驪興閔氏)
- 남형제 : 윤인귀(尹仁貴)
- 제부 : 장령(掌令) 성원도(成元度)
- 시아버지 : 제27대 충숙왕(忠肅王, 1294~1339, 재위:1313~1330, 1332~1339)
- 시어머니 : 공원왕후(恭元王后, 1298~1380)
희비 윤씨가 등장하는 작품
[편집]출처
[편집]-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희비〉항목
- ↑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민환〉항목”. 2016년 3월 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7월 1일에 확인함.
- ↑ 《고려사》권124〈열전〉권37 - 폐행 - 민환
- ↑ 가 나 《고려사》권89〈열전〉권2 - 희비 윤씨
- ↑ 《동국통감》권 46 고려기 1352년
- ↑ 《동국통감》권 56 고려기 1391년
- ↑ 《국조인물고》- 민제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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