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군인’을 아시나요.
어떤 말 앞에 아스팔트가 앞에 붙으면 거칠고 힘들고 말이 아닌 행동을 강조하는 뜻이 된다. 예컨대 아스팔트 우파하면 태극기 부대가 떠오른다. 하지만 ‘아스팔트 군인’은 이런 아스팔트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뜻이다. 아스팔트 군인은 ‘꽃보직’에서 편안하게 근무하는 군인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전방부대가 아니라 서울 등 대도시, 한강 이남 후방 부대에서 근무하는 군인을 말한다.
육군 장교들 사이에서는 근무 여건의 좋고 나쁨을 도로 포장을 기준으로 나누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전국 어디나 도로가 포장돼 있지만, 1980년대까지는 서울 이북의 경기도, 강원도 지역 전방부대에는 비포장 도로가 많았다. 이 지역 장병들이 훈련을 하려고 흙길을 따라 이동하면 뿌연 흙먼지를 마시고 뒤집어쓰기 일쑤였다.
이와 달리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등 대도시에 있는 부대,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 근처에는 아스팔트 도로가 깔려 있다. 이들은 근무 중 흙먼지를 마시거나 뒤집어쓸 일이 없었다. 전방 야전부대에 근무하는 장교들은 서울이나 후방에 근무하는 장교들을 아스팔트 군인이라고 불렀다. 아스팔트 군인은 전방부대에서 야전 근무 경험이 별로 없고 서울에 있는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수방사와 계룡대 육군본부를 오가며 근무하는 군인을 말한다. 이들은 야전부대 근무는 진급과 경력 관리에 꼭 필요한 만큼만 짧게하고, 주로 서울과 계룡대에서 근무한다.
아스팔트 군인이 야전에서 근무하는 군인보다 진급과 보직에서 월등하게 유리하다. 국방부, 합참, 육군본부, 수방사 등에서 근무하면 인사평가와 진급심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쉽기 때문이다. 영관급 아스팔트 군인들은 고위 지휘관의 수행부관, 비서실, 국방부 정책부서에서 근무하는데, 이들의 상관이 군 인사권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모시던 지휘관이 국방부 장관이나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이 되면 장군 진급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검사 조직으로 치면 야전군인은 형사부 검사, 아스팔트 군인은 공안·특수부 검사다. 형사부 검사가 민생범죄를 맡고 특수부 검사가 정치권과 기업 수사를 맡는다. 역대 검찰총장이 취임하면 민생과 직결된 형사부 검사가 중요하다며 형사부 강화를 강조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민생침해 범죄와 싸우는 형사부 검사의 일은 아무리 잘 해도 표시가 나지 않지만 특수부 검사는 ‘거악과 맞장 뜨는 칼잡이’로 유명해진다. 특수부 출신이 검찰총장, 서울지검장 등 검찰 요직을 차지했다. 이들은 정치에도 관심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해진 홍준표 대구시장, 한동훈 전 국민의힘대표 등이 특수부 검사 출신이다.
12·3 내란사태를 기획한 김용현 전 국방장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등이 전형적인 아스팔트 군인이다. 김용현 전 장관은 중위, 대위, 소령, 대령 때 수도경비사령부(수방사 전신)와 다른 부대를 오가며 근무했고 장군 때는 수방사령관을 지냈다. 그는 육군참모총장 비서실장,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등을 지냈다. 김 전 장관은 전체 군 생활 35년 중 육군본부, 합참, 수방사에서 절반 가량인 16년을 근무했다.
여 전 사령관은 국방부 정책관리담당관,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 육군본부 교육훈련정책과장, 작전교훈차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정보작전참모부장 등을 지냈다. 그는 장군 진급 뒤 지휘관 생활을 후방인 전남 담양(11공수 여단장)과 부산시 해운대(육군 53사단장)에서 했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근무연으로 얽혀 있다. 1990년대 이후 육사 11기를 주축으로 만든 하나회 같은 사조직이 군대 안에서 없어진 뒤 같은 부대, 보직에서 근무한 인연인 근무연이 장교들의 승진과 보직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아스팔트 군인들끼리 인사 때 밀어주고 끌어주는 관계가 만들어졌다.
여 전 사령관이 소령 시절 육군본부 홍보기획과에서 근무했을 때 그의 상관(총괄장교)은 충암고 10년 선배인 김용현 전 장관(당시 중령)이었다. 노상원 전 사령관이 대위 때 수도방위사령부 제55경비대대에서 근무했을 때 같은 부대 작전과장이 김용현 전 장관(당시 소령)이었다. 노 전 사령관이 육군참모총장 비서실 정책과장(대령)이었을 때 비서실장이 김 전 장관(당시 준장)이었다.
민간인 신분인 노상원 전 사령관이 현역 장군을 햄버거 집으로 부를 수 있었던 힘은 군 인사권을 쥔 김용현 전 장관과의 밀접한 관계에서 나왔다. 평소 노 전 사령관은 주변에 “내가 김용현 전 장관과 가까운 사이라는 것은 군 안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진급에 목매고 사는 현역 장군들은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이나 지시를 국방장관의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12·3 내란사태는 온실 속에서 특혜를 누려온 아스팔트 군인들이 주도했다. 제2의 내란사태를 막으려면, 군 인사의 틀을 바뀌어서 아스팔트 군인의 전성시대를 끝내고 야전군인이 우대받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권혁철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