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디 엘 나트룬
와디 엘 나트룬 | |
(지리 유형: 사막) | |
와디 엘 나트룬에 있는 시리아의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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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 이집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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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 베헤이라 주 |
좌표 | 북위 30° 35′ 서경 30° 20′ / 북위 30.583° 서경 30.333° |
시간대 • 섬머타임(DST): |
EST (UTC+2) +3(UTC) |
와디 엘 나트룬("나트론 계곡"의 아랍어)는 이집트 베헤이라 주에 있는 계곡으로, 같은 이름의 한 마을을 포함한다. 이 지역의 이름은 콥트어로 "심장의 측정"이고, 그리스어로 "금욕주의"를 뜻하는 스케티스(Σκετις) 또는 스케테스(Σκετες)라고도 하며, 천연 탄산염을 생산하는 이 지역에 있는 여덟 곳의 다른 호수들의 실재와 관련있는데, 기독교 문학에서는 니트리아 사막(the Nitrian Desert)으로 언급된다. 고대에, 여기의 나트론은 장례식에 사용하기 위해서 채굴되었다. 성가정이 이집트로의 피신 기간에 와디 엘 나트룬을 방문했다고도 믿어진다.
역사
[편집]알칼리 호수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미라에 사용되는 탄산수소나트륨을 제공했다.
와디 엘 나트룬 지역은 기독교에서 가장 성스러운 지역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4세기에, 이집트의 성 마카리우스가 이 사막에서 은거했고,[1] 7세기, 이 지역은 세계 도처에서 니트리아 사막의 수백 곳의 수도원에 입소하려는 수천 수백 명의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황량한 이 지역은 사막 교부들과 케노비테 수도원 공동체들의 성소가 되었다. 많은 은자들, 은수자들과 수사들이 이 사막과 이 지역 주변의 언덕에서 살았다. 그들은 이 사막의 궁핍을 스토아주의 자기수양(금욕주의)을 배우는 의미로 여겼기 때문에, 니트리아 사막의 고독은 그러한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따라서, 그 개인들은 사막 생활이 그들에게 속세의 것들을 멀리하도록 가르치고, 더 신중하고 개인적인 방법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할 수 있게 허락한다고 믿었다.
이 지역의 성인들
[편집]이 지역의 가장 유명한 성인들로는 난쟁이 요한, 아르세니우스, 대 포이멘, 도마티오스, 막시모스[누가?], 아문, 알렉산드리아의 마카리우스, 이집트의 마카리우스와 증거자 사무엘, 피스호이와 흑인 모세와 같은 사막의 교부들이 있다.
수도원들
[편집]641년 경의 무슬립의 이집트 정복으로 이 지역의 중요성이 줄어들었다. 그 때에 많은 수도원들이 파괴되었고 약탈당했다. 오늘날, 네 곳의 자급자족할 수 있는 요새화된 수도원들만이 남아있는데, 모두 다 4세기부터 있어 왔다.
생텍쥐페리
[편집]와디 나트룬의 주변은 1935년 12월 30일에 프랑스인 비행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비행기가 추락한 곳으로 예상되는 장소와 동일시 된다. 그런 경험은 생텍쥐페리의 저서 "바람, 모래 그리고 별들"과 그의 영감에 기인한 또 다른 저서 "어린 왕자"에 일부 저술되어 있다.
사진 갤러리
[편집]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와디 나트룬에 처음으로 정착한 수사는 300년부터 사막에서 은거하기 시작한 이집트의 마카리우스이다." (Hugh G. Evelyn-White, "The Egyptian Expedition 1916-1919: IV. The Monasteries of the Wadi Natrun"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Bulletin, 15.7, Part 2: The Egyptian Expedition 1916-1919 [1920년 7월]:34~39쪽) 34쪽; 이빌린 화이트의 글은 문학 자료로부터 와디 나트룬의 간략한 개요를 제공한다.
추가 문헌
[편집]- M. Cappozzo, I monasteri del deserto di Scete, Todi 2009 (Tau Editore).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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