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 (불교)
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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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自性, 산스크리트어: svabhāva, sva-laksana, svalakṣaṇa, 팔리어: sabhāva, 영어: intrinsic nature, essential nature, essence)은 다른 어떤 것과도 관계하지 않는 자기만의 특성이다. 즉, 어떤 법(法)의 본질적 성질을 그 법(法)의 자성이라고 하며, 간단히 성(性)이라고도 하며 또한 다른 말로 체(體) 또는 실체(實體)라고도 하며 또한 체성(體性)이라고도 한다.[1][2][3][4] 어떤 법(法)의 자성은 해당 법을 다른 법과 구별되게 하는 결정적 요소이다.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와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서는 흔히 자상(自相)이라고도 하며 또한 체상(體相)이라고도 한다.[2][3][4][5][6]
어떤 법(法)의 본질적 성질을 자성(自性), 자상(自相) 또는 성(性) 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그 법(法)이 이 본질적 성질을 바탕으로 다른 법(法)에 대해 일으키는 본래의 작용(作用), 즉 본질적 작용을 업(業) 또는 용(用)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업(業)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작용'의 뜻이 있다.[7] 예를 들어,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주요 논서인 안혜의 《대승광오온론》의 제1권 그리고 호법 등의 《성유식론》의 제5권부터 제7권까지에서는 여러 마음작용(심소법)들에 대해 정의하고 설명하고 있는데, 각각의 마음작용(심소법)을 정의할 때 해당 마음작용의 본질적 성질인 성(性)과 본질적 작용인 업(業)을 밝힘으로써 해당 마음작용을 정의하고 있다. 본질적 성질인 성(性)과 본질적 작용인 업(業) 또는 용(用)은 동전의 앞면 · 뒷면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질적 성질[性]을 다른 말로는 성능(性能)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성은 성질 즉 본질적 성질을 뜻하고 능은 기능 또는 능력 즉 본질적 기능 또는 본질적 능력을 뜻한다. 한편, 성능의 일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물건이 지닌 성질과 능력 또는 기능'이다.[8]
한편, 본질적 성질과 본질적 작용을 합하여 불교 용어로 체용(體用)이라고도 하는데, 그 의미를 확대하여, 즉 체(體)와 용(用)을 개별 법의 본질적 성질과 본질적 작용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체(體)를 일체의 만법의 본성으로, 용(用)을 본성이 일체의 만법 즉 차별적 현상을 구체화시켜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9] 체상(體相)을 이러한 뜻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즉, 체(體)를 본질로, 상(相)을 본질이 구체화된 모습 즉 차별적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10]
자성(自性) 또는 자상(自相)에 대하여, 공상(共相, 산스크리트어: sāmānya lakṣaṇa, 영어: common nature)은 여러 가지 법(法: 개별 존재)에서 공통으로 존재하는 특성이다. 예를 들어, 가을의 산이 빨갛고 불이 빨갛고 옷이 빨갛다고 할 때의 공통의 빨강을 가리켜 공상(共相)이라고 하고, 파랑 혹은 노랑 등과 구별되는 빨강 그 자체를 가리켜 자상(自相)이라고 한다.[11][12]
자상(自相)에는 처자상(處自相)과 사자상(事自相)의 구별이 있다.
임지자성 궤생물해
[편집]법(法)에는 객관적으로 독립된 실체 또는 존재라는 의미가 있는데,[13] 임지자성 궤생물해(任持自性 軌生物解)는 이러한 의미의 법을 정의할 때 흔히 사용되는 문구이다.
중국 법상종의 규기(窺基)는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에서 법(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는데, 이 진술을 더 간단히 요약하여 "임지자성 궤생물해(任持自性 軌生物解)"라고 한다.[14] 이 정의는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의 법(法)에 대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14]
法謂軌持。軌謂軌範可生物解。持謂住持不捨自相。
법(法)은 궤지(軌持)를 말한다. 궤(軌)는 [해당 사물이 지닌] 궤범이 [해당] 사물에 대한 앎[解: 인식, 요해, 요별, 지식]을 낼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지(持)는 [해당 사물이] 자상(自相)을 지니고 있어서 잃어버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규기 조. 《성유식론술기》, 제1권, T43, p. 239c. 한문본
즉, 임지자성(任持自性)은 자신만의 자성(自性) 또는 자상(自相), 즉 본질적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고, 궤생물해(軌生物解)는 해당 사물에 대한 앎[解, 인식, 요해, 요별, 지식]을 낳게 하는 궤범이라는 뜻이다.[2] 궤범은 사물과 사물 사이에 작용하는 규범, 즉 법칙적 관계를 뜻하는데,[14] '궤생물해'는 해당 사물(법)이 다른 사물(법)들에 대해 가지는 법칙적 관계, 즉 본질적 작용이 해당 사물(법)을 앎[解]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5온 중의 하나인 수온, 즉 마음작용 중의 하나인 수(受)는 고수(苦受) · 낙수(樂受) ·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의 3수(三受)로 나뉘는데, 3수는 다음과 같이 다른 마음작용인 촉(觸)과 욕(欲)과의 관계에서 파악할 때 아주 명료하게 이해된다.
云何受蘊。謂三領納。一苦二樂三不苦不樂。
樂謂滅時有和合欲。
苦謂生時有乖離欲。
不苦不樂謂無二欲。
수온(受蘊)이란 무엇인가? [지각대상에 대한] 3가지의 느낌[領納, 지각]을 말하는데, 첫 번째는 괴롭다는 느낌[苦受]이고, 두 번째는 즐겁다는 느낌[樂受]이고, 세 번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不苦不樂受]이다.
즐겁다는 느낌[樂受]이란 [그 지각대상이] 사라질 때 [즉, 지각대상과 헤어질 때, 그것과]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욕구[和合欲]가 있는 것을 말한다.
괴롭다는 느낌[苦受]이란 [그 지각대상이] 생겨날 때 [즉, 지각대상과 만날 때, 그것과] 떨어지고 싶어하는 욕구[乖離欲]가 있는 것을 말한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不苦不樂受]이란 이들 2가지 욕구[欲]가 없는 것을 말한다.
즉, 법을 '임지자성 궤생물해(任持自性 軌生物解)'라고 정의하는 것은, 법은 자기만의 자성 또는 자상을 지니고 있어서 그 자성 또는 자상은 해당 법에 대한 앎[解, 인식, 요해, 요별, 지식]의 궤범이 되어 해당 법을 종합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며, 또한 이러한 사물 또는 존재를 법(法)이라 한다는 것이다.[2]
처자상과 사자상
[편집]자상(自相)에는 처자상(處自相)과 사자상(事自相)의 구별이 있다.[15]
처자상(處自相)은 6근(六根) · 6경(六境)의 12처(十二處) 각각의 본질적 특성을 말한다. 즉,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의근(意根)·색경(色境)·성경(聲境)·향경(香境)·미경(味境)·촉경(觸境)·법경(法境) 각각의 본질적 특성을 말한다. 사자상(事自相)은 특정한 처(處)의 자상, 즉 특정한 처자상(處自相)을 더욱 세분한 것을 말한다.[15]
예를 들어,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색경(色境)에는 다음의 총 20가지의 사자상이 있다.[15][16][17][18]
부파불교 시대의 설일체유부와 경량부 등의 인식론에서는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 5식, 즉 5식신(五識身)은 자상(自相)만을 취(取: 요별)한다"는 것을 인식에 대한 일반적 규칙들 중 하나로 보았는데, 설일체유부에서는 이 때의 "자상"은 처(處)의 자상, 즉 처자상(處自相)을 말하는 것이지, 사물의 자상, 즉 사자상(事自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15]
한편, 설일체유부에서는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 5식, 즉 5식신(五識身)은 자상(自相)이 아닌 공상(共相)을 취한다"라는 것을 인식에 대한 규칙들 중 하나로 주장하였는데, 이 규칙에서의 "공상"이라는 말은 처자상을 뜻하고 "자상"이라는 말은 사자상을 뜻한다고 하였다.[15] 즉,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 5식, 즉 5식신(五識身)은 자상(自相)만을 취(取: 요별)한다"라는 인식 규칙을 달리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고 하였다.
같이 보기
[편집]참고 문헌
[편집]- 권오민 (2003). 《아비달마불교》. 민족사.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아비달마구사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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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운허. 동국역경원 편집, 편집. 《불교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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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최봉수 (1999). 〈색온에서의 색의 의미 - 구사론과 청정도론의 색온론을 비교하여〉. 《불교학보》.
- 황욱 (1999). 《무착[Asaṅga]의 유식학설 연구》. 동국대학원 불교학과 박사학위논문.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성유식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614(17-510), T.158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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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무착 조, 현장 한역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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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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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세친 조, 현장 한역 (T.1558).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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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세친 조, 현장 한역 (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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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안혜 조, 현장 한역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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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 (T.1613).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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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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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각주
[편집]- ↑ 운허, "體性(체성)". 2012년 11월 5일에 확인
"體性(체성): 물건의 본질을 체라 하고, 체가 변하여 고쳐지지 않는 것을 성이라 하니, 체가 곧 성." - ↑ 가 나 다 라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4 / 1397쪽.
- ↑ 가 나 운허, "自性(자성)". 2012년 9월 12일에 확인.
- ↑ 가 나 星雲, "自性". 2012년 9월 12일에 확인.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2권. p. T31n1585_p0007c13 - T31n1585_p0007c19. 8단 10의문(八段 十義門)
"且初能變其相云何。頌曰。
初阿賴耶識 異熟一切種
3不可知執受 處了常與觸
作意受想思 相應唯捨受
4是無覆無記 觸等亦如是
恒轉如瀑流 阿羅漢位捨"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2권. pp. 78-79 / 583. 8단 10의문(八段 十義門)
"우선 초능변식(初能變識)의 체상은 어떠한가?82)
게송(『삼십송」의 제2 · 3 · 4 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 번째는 아뢰야식이고,
이숙식이며, 일체종자식이니라.
감지하기 어려운 집수(執受)와 기세간[處]의
요별을 갖네.
항상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의 심소와 상응한다.
오직 사수(捨受)와 상응하네.
이것은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이니,
촉 등도 역시 그러하다.
항상 폭류(暴流)의 흐름처럼 유전(流轉)한다.
아라한위에서 버리네.83)
82) 이하 초능변식(初能變識)에 관한 게송을 총체적으로 열거한다.
83) 이 게송들의 뜻을 해석함에 있어서 성유식론 2 · 3 · 4 권에 걸쳐 8단(段) 10의문(義門)으로 설명한다. 우선 10의문은, ①자상문(自相門:아뢰야식), ②과상문(果相門:이숙식), ③인상문(因相門:일체종자식), ④소연문(所緣門:執受와 處), ⑤행상문(行相門:요별), ⑥상응문(相應門:촉 · 작의 · 수 · 상 · 사), ⑦수구문(受俱門:捨受), ⑧3성문(性門:무부무기성 · 촉 등도 그러함), ⑨인과비유문(因果譬喩門:항상 폭류의 흐름처럼 유전함), ⑩복단위차문(伏斷位次門:아라한위이다)이고, 다음에 8단문(段門)은 ①②③을 합하여 3상문(相門)으로 하고, ④⑤를 합하여 소연행상문(所緣行相門)으로 한다. 그리고 제6에 심소동례문(心所同例門)을 첨가하여 총 여덟 가지로 분단(分段)한다." - ↑ 星雲, "業". 2012년 11월 4일에 확인. 작용(作用)으로서의 업(業)
"業: 梵語 karman,巴利語 kamma。音譯作羯磨。為造作之義。意謂行為、所作、行動、作用、意志等身心活動,或單由意志所引生之身心生活。若與因果關係結合,則指由過去行為延續下來所形成之力量。此外,「業」亦含有行為上善惡苦樂等因果報應思想,及前世、今世、來世等輪迴思想。本為印度自古以來所流行之思想,佛教即採用此一觀念,作為人類朝向未來努力之根據;其於佛學中之含意與界說分述如下: 一般而言,業分身、語、意等三業,小乘說一切有部更進一步解釋為:內心欲行某事之意志稱為意業;以身體之行動與言語表現其意志者,即是身業、語業(口業)。此外,業又可分為二種,思業指意志之活動,思已業指思業中已付諸行動者;於此,思業同於意業,思已業同於身、語二業。對三業作用之本體(業體、業性),一切有部等諸部派認為意業屬於心法(意志),而身、語業屬於色法(物質);大乘佛教與經量部則主張所有諸業盡屬於心之活動。若論佛教之基本立場,理應採取後者無疑。" - ↑ "性能", 《네이버 한자사전》. 2013년 2월 21일에 확인.
"性能(성능): 性 성품 성, 能 능할 능, 견딜 내. 어떤 물건(物件)이 지닌 성질(性質)과 능력(能力) 또는 기능(技能)" - ↑ 星雲, "體用". 2013년 1월 19일에 확인
"體用: 指諸法之體性與作用。體,即體性,不變之真理實相,無有分別;用,即作用,差別現象之具體表現。頓悟要門論卷下(卍續一一○‧四三○上):「淨者,本體也;名者,爲用也。從本體起迹用,從迹用歸本體,體用不二,本迹非殊。」〔法華文句卷三下〕" - ↑ 운허, "體相(체상)". 2013년 4월 7일에 확인
"體相(체상): 본질을 체, 본질에 의하여 밖으로 나타나는 모양을 상. 체는 하나이고, 상은 하나가 아니며, 체는 절대적이고, 상은 상대적이며, 체는 무한이고, 상은 유한함." - ↑ 운허, "共相(공상)". 2012년 9월 18일에 확인.
- ↑ 星雲, "共相". 2012년 9월 18일에 확인.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11 / 1397쪽.
- ↑ 가 나 다 황욱 1999, 26쪽.
- ↑ 가 나 다 라 마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20 / 1397쪽.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15 / 1397쪽.
- ↑ 운허, "顯色(현색)". 2012년 9월 18일에 확인.
- ↑ 최봉수 1999, 2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