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적정 (불교)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끊어지지는에서 넘어옴)

적정(寂靜)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고요함인데 불교에서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적정 (열반)

[편집]

적정(寂靜)은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열반(涅槃) 또는 해탈(解脫)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2][3] 이를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고도 한다.

(貪, 탐욕) · (瞋, 노여움) · (痴, 어리석음)의 3독(三毒) 또는 3불선근(三不善根)은 모든 불선 또는 번뇌의 뿌리이므로, 3불선근이 모든 번뇌의 근본이라는 뜻에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시켰다는 것은  ·  · 를 완전히 소멸시켰다는 것과 같은 표현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2]

한편,  ·  · 를 일부나마 소멸(消滅)시켰다는 것, 즉 번뇌를 일부나마 소멸시켰다는 것, 즉 번뇌를 일부나마 극복(克服)했다는 것은 끊음 또는 단멸(斷滅), 즉, '끊음으로써 소멸시킴'을 말하는 것으로, '해당 번뇌 자체를 죽였다, 해당 번뇌 자체를 파괴시켰다'는 뜻이 아니라 '해당 번뇌로부터 떠났다'는 뜻이다. 즉 멀리 떠남의 뜻인 원리(遠離)를 말한다. 즉 해당 번뇌와 더 이상 상응하지 않음을 말한다. 그리고, '모든 번뇌를 멀리 떠났다' 또는 '모든 번뇌를 끊었다'는 것은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더 이상 그 어떤 번뇌와도 상응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9] 이것을 달리 말하여, 더 이상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번뇌, 즉  ·  · 의 놀이터[所依, 활동 공간, 의지처, playground]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7]

적정 (사의 마음작용)

[편집]

적정(寂靜)은 행사(行捨), 즉 (捨)의 마음작용이 일으키는 결과물로서의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고요함'을 말한다. 다른 말로는, 정주(靜住: 고요히 머무는 것)라고도 한다. 대승불교유식유가행파법상종의 주요 논서들에 속하는 무착의 《대승아비달마집론》, 안혜의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세친의 《대승오온론》, 호법 등의 《성유식론》에 따르면, 적정(寂靜)에는 평등(平等) · 정직(正直) · 무공용주(無功用住)의 3단계가 있다.[4][5][6][7][8]

평등(平等)은 적정(寂靜)의 제1단계[初位], 정직(正直)은 제2단계[中位], 무공용주(無功用住)는 제3단계[後位]이다.[4][5][7]대승아비달마잡집론》에 따르면, 이와 같은 3단계의 차별이 있는 이유는 행사(行捨)의 마음작용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과 상응한 결과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잡염(雜染: 근본번뇌수번뇌, 즉 모든 번뇌)에 침몰(沈沒)된 상태를 떠난 정도에 있어서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7]

한편, 《성유식론》에 따르면, 불방일(不放逸, 손 놓지 않음, 성실)의 마음작용상응하여 잡염(雜染)을 제거[除]한 후 다시 행사(行捨), 즉 (捨)의 마음작용과 상응하여 적정(寂靜)에 머무르게 된다. 즉, 적정(寂靜)에 이르기 위한 (捨)의 수행의 전 단계가 불방일(不放逸, 손 놓지 않음, 성실)을 통해 잡염(雜染)을 제거하는 것이다.[4][5]

평등

[편집]

대승아비달마잡집론》에 따르면, 제1단계의 평등(平等: 차별이 없음, 모두가 동일함)을 증득한 상태가 되면,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탄력을 받아 잡염(雜染: 근본번뇌수번뇌, 즉 모든 번뇌)에 침몰(沈沒)된 상태를 '멀리 떠나는 것[遠離]'을 '더욱 힘써 하게[加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형성된 '멀리 떠남[遠離]'의 힘이 자연히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에 상속(相續)된다.[7]

정직

[편집]

대승아비달마잡집론》에 따르면, 제2단계의 정직(正直: 바르고 곧음)을 증득한 상태가 되면,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모든 잡염(雜染: 근본번뇌수번뇌, 즉 모든 번뇌)에 대해 '두려워 하는 마음[怯慮]'을 가지지 않게 된다.[7]

무공용주

[편집]

대승아비달마잡집론》에 따르면, 마지막, 제3단계의 무공용주(無功用住: 무공용으로도 머뭄)를 증득한 상태가 되면, 무공용(無功用)에도 불구하고, 즉 공용(功用)이 없음에도, 즉 공(功)을 쌓음[用]이 없음에도, 즉 힘써 노력함[功用]이 없음에도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언제나 자연히 (捨)의 상태, 즉 정주(靜住: 고요히 머무는 것), 즉 적정(寂靜: 고요함)에 머물게 된다.[7]

(捨)의 마음작용상응함으로써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가지게 되는 상태인 정주(靜住: 고요히 머무는 것) 또는 적정(寂靜: 고요함)은 잡염주(雜染住), 즉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잡염(雜染)에 머무는 상태'와는 상반[相違, 相反]되는 것이다. 즉 (捨)의 상태, 정주(靜住: 고요히 머무는 것), 또는 적정(寂靜: 고요함)은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잡염(雜染: 근본번뇌수번뇌, 즉 모든 번뇌)의 의지처[所依, 활동 공간, 놀이터, playground]가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상태이다.[7]

참고 문헌

[편집]
  • 곽철환 (2003).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 네이버 지식백과.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권오민 (2003). 《아비달마불교》. 민족사. 
  • 운허. 동국역경원 편집, 편집. 《불교 사전》.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성유식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614(17-510), T.1585(31-1).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황욱 (1999). 《무착[Asaṅga]의 유식학설 연구》. 동국대학원 불교학과 박사학위논문. 
  • (중국어) 무착 조, 현장 한역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세친 조, 현장 한역 (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안혜 조, 현장 한역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각주

[편집]
  1. 운허, "寂靜(적정)". 2012년 10월 26일에 확인.
  2. 곽철환 2003, "적정(寂靜)". 2012년 10월 26일에 확인.
  3. "적정(寂靜)",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 《네이버 지식백과》. 2012년 10월 26일에 확인.
  4.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6권. p. T31n1585_p0030b21 - T31n1585_p0030b28. 행사(行捨)심소
    "云何行捨。精進三根令心平等正直無功用住為性。對治掉舉靜住為業。謂即四法令心遠離掉舉等障靜住名捨。平等正直無功用住。初中後位辯捨差別。由不放逸先除雜染。捨復令心寂靜而住。此無別體如不放逸。離彼四法無相用故。能令寂靜即四法故。所令寂靜即心等故。"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FOOTNOTE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T.1585제6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30b21 T31n1585_p0030b21 - T31n1585_p0030b28]. 행사(行捨)심소"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5.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6권. pp. 295-296 / 583. 행사(行捨)심소
    "무엇이 ‘행사(行捨)심소’71)인가? 근(勤) · 세 가지 선근이 심왕으로 하여금 평등하고 적정하며 작용[功用]이 없이 머물게 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도거(掉擧)를 다스려서 고요히 머물게 함을 업으로 삼는다. 네 가지 법이 심왕에서 도거 등의 장애를 멀리 여의어서 고요히 머물게 하는 것을 행사(行捨)라고 이름한다. 평등하고 적정하며 작용이 없이 머물게 한다는 것은, 처음 · 중간 · 나중의 지위에서 행사심소의 차이를 판별한 것이다. 불방일이 먼저 잡염을 제거함에 의해서, 행사 심소가 다시 심왕을 적정히 머물게 한다. 이것은 별도의 자체가 없다. 불방일처럼 그 네 가지 법72)에서 떠나서 별도의 체상과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능히 적정하게 하는 것은 네 가지 법이기 때문이다. 적정하게 된 것은 심왕 등이기 때문이다.
    71) 행사(行捨, upekṣā)심소는 마음의 ‘평정’을 이루게 하는 심리작용이다. 여기서 ‘사(捨)’는 혼침이나 들뜸[掉擧]이 아닌 평정상태를 말한다. ‘행사(行捨)’란 5온(蘊) 중에 수온(受蘊)이 아닌 행온(行蘊)에 포함되는 사(捨)라는 뜻이다.
    72) 근(勤)심소와 세 가지 선근의 심소를 가리킨다."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FOOTNOTE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제6권. p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295 295-296 / 583]. 행사(行捨)심소"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6. 무착 조, 현장 한역 & T.1605, 제1권. p. T31n1605_p0664b19 - T31n1605_p0664b22. 행사(行捨)심소
    "何等為捨。謂依止正勤無貪無瞋無癡。與雜染住相違。心平等性。心正直性。心無功用住性為體。不容雜染所依為業。"
  7. 안혜 조, 현장 한역 & T.1606, 제1권. p. T31n1606_p0697c17 - T31n1606_p0697c24. 행사(行捨)심소
    "捨者。依止正勤無貪瞋癡與雜染住相違。心平等性。心正直性。心無功用住性為體。不容雜染所依為業。心平等性等者。謂以初中後位辯捨差別。所以者何。由捨與心相應離沈沒等不平等性故。最初證得心平等性。由心平等遠離加行自然相續故。次復證得心正直性。由心正直於諸雜染無怯慮故。最後證得心無功用住性。"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FOOTNOTE안혜 조, 현장 한역T.1606제1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06_p0697c17 T31n1606_p0697c17 - T31n1606_p0697c24]. 행사(行捨)심소"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8. 세친 조, 현장 한역 & T.1612, p. T31n1612_p0849a02 - T31n1612_p0849a04. 행사(行捨)심소
    "云何為捨。謂即無貪乃至精進依止此故。獲得所有心平等性心正直性心無發悟性。又由此故於已除遣染污法中無染安住。"
  9. 권오민 2003, 215–229쪽
    "[아비달마불교의 교학에 따르면] 모든 번뇌는 실유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소멸할 수는 없다. 물론 그것은 유위법이기 때문에 찰나찰나 생겨나는 순간 소멸하지만(이를 無常滅이라고 한다), 이것은 열반을 의미하는 번뇌의 단멸이 아니다. 왜냐하면 소멸하는 순간 동류의 또 다른 번뇌가 상속함으로써 우리들 경험상에 '번뇌'라고 하는 지속된 심리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번뇌를 끊는다' '번뇌를 끊어라'고 말하지 '번뇌를 소멸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번뇌를 끊는다'고 함은, 마음이 더 이상 번뇌의 온갖 심소心所와 동시생기(俱生)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더 이상 마음의 상속상에 획득되지 않게 될 때, '번뇌가 단멸斷滅되었다'고 한다. 이 때 전자의 수행도를 무간도無間道라 하고, 후자의 수행도를 해탈도解脫道라고 한다. 예컨대 전자가 도둑을 잡아 문 밖으로 쫓아내는 것이라면 후자는 그것을 확인하고 문을 닫아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불교의 궁극적 지향점인 적정안온의 열반은 바로 이 같은 번뇌의 단멸에서 증득되는 것으로, 그것은 오로지 더 이상 번뇌를 수반하는 일이 없는 지혜의 힘, 무루 간택력簡擇力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에 '택멸'이라고도 한다. 온갖 번뇌를 비롯한 모든 존재(諸法)의 참다운 관찰만이 중생을 열반으로 이끌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아비달마의 목적이었다. 아비달마 논사들은 오로지 4제에 대한 통찰과 무루 간택력에 따른 예지만이 그들을 번뇌 단멸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이유에서 그들은 번뇌의 단멸을 변지遍知라고 하였다. 변지(parijna, 구역에서는 永斷)는 말 뜻대로라면 바로 4제의 진리성에 대해 두루 아는 것이지만, 그 결과 번뇌가 영원히 끊어지기 때문에 번뇌의 단멸을 '변지'라고 일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열반이 그러하듯이 번뇌의 단멸이라는 측면에서 98수면 각각의 끊어짐을 변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견소단의 경우 이계離繫의 득得을 증득하고, 3계 9지의 최후인 비상비비상처 즉 유정지有頂地의 5부의 번뇌를 완전히 끊었으며, 자부自部·자품自品의 동류인과 타부他部·타품他品의 변행인이 되는 번뇌를 멸하였을 때에만, 수소단의 경우 이와 함께 욕·색·무색계의 번뇌를 모두 끊어 그것을 초월한 때에만 변지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