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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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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허씨
金海 許氏
나라한국
관향경상남도 김해시
시조허수로(許首露)
집성촌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장산리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어전리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 전동리
주요 인물허유전, 허백기, 허만정, 허위, 허진, 허정, 허정구, 허형구, 허정훈, 허삼수, 허대범, 허남훈, 허화평, 허경구, 허동수, 허태열, 허성관, 허창수, 허남식, 허경영, 허범도, 허원제, 허준영, 허기도, 허성무, 허태웅, 허준우
인구(2015년)134,068명

김해 허씨(金海 許氏)는 경상남도 김해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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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국 수로왕의 비(妃) 허황옥(許黃玉)을 기원으로 한다. 허황옥은 원래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로서 서기 48년 16세 때 배를 타고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에 있는 부인당(夫人唐)으로 들어와 정박을 했는데 수로왕이 의장(儀仗)을 갖추어 영접한 후 왕비로 맞이했다고 한다. 그 후 아들 10명을 낳았는데, 맏아들 거등(居登)은 김씨로 왕통을 잇게 하고, 두 아들은 허황후의 성(姓)을 따서 허씨(許氏)로 사성(賜姓)했으며, 나머지 일곱 아들은 불가에 귀의하여 하동칠불(河東七佛)로 성불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허황옥의 후손으로 공암현에서 부농으로 세거했던 허선문(許宣文)의 후손은 공암(孔巖), 허사문(許士文)의 후손은 태인(泰仁), 33세손 허강안(許康安)의 후손은 하양(河陽), 35세손 허염(許琰)의 후손은 김해(金海)로 분관(分貫)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고 한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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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허씨(金海 許氏)의 시조 허염(許琰)은 가락국 수로왕비인 허황후(許黃后)의 35세손으로 전하며, 거칠군(居漆君)의 후손이다. 고려 때 삼중대광을 이르렀고 가락군에 봉해졌다고 한다.

김해 허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6명을 배출하였다.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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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金海)는 경상남도 김해시의 지명이다. 낙동강(洛東江) 하구 남서쪽에 위치하여 가락국(駕洛國)의 중심지로 발전하여 왔다. 532년(신라 법흥왕 19) 신라에 병합되어 금관군(金官郡)이 되었다. 680년(문무왕 20)에 금관소경(金官小京)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김해소경(金海小京)으로 바꾸어 양주(良州)의 관할로 두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김해부(金海府)로 개칭되었고 임해현(臨海縣)으로 다시 강등되었다가 곧 임해군으로 승격되었다. 995년(성종 14)에 김해안동도호부(金海安東都護府)로 개칭하여 영동도(嶺東道)에 속하였다가 1012년(현종 4) 김해군방어사로 강등되었으나 1018년부터 의안군(義安郡: 昌原)·함안군(咸安郡)·칠원현(漆原縣: 漆原面)·웅신현(熊神縣: 鎭海)등을 영현으로 삼았다. 1270년(원종 11) 방어사(防禦使) 김훤이 인접지역인 밀성(密城)의 난을 평정하여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1293년(충렬왕 19) 현으로 강등되었다. 1308년 금주목(金州牧)으로 승격하였으나 1310년(충선왕 2) 김해부(金海府)로 격하되었다. 1413년(태종 13) 김해도호부로 승격되어 세조 때 진(鎭)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김해군이 되었고, 1981년 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하여 분리되었으며, 1995년에는 김해군을 통합하였다.

분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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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염
許琰
2
허군언
許君彦
3
허자
許資
4
허송죽
許松竹
4
허연
許延
4
허징
許澂
5
허인전
許仁全
가락군파
(駕洛君派)
5
허유전
許有全
시중공파
(侍中公派)
5
허평
許枰
5
허상
許相
상서공파
(尙書公派)
6
허영
許榮
6
허화
許華
6
허창
許敞
6
허증
許增
7
허기
許麒
호은공파
(湖隱公派)
7
허린
許麟
중승공파
(中承公派)
7
허인부
許仁副
전직공파
(典直公派)
7
허구년
許龜年
증성군파
(甑城君派)
7
허언룡
許彦龍
판서공파
(判書公派)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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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락군파(駕洛君派) : 허인전(許仁全)
  • 시중공파(侍中公派) : 허유전(許有全)
  • 호은공파(湖隱公派) : 허기(許麒)
  • 중승공파(中承公派) : 허린(許麟)
  • 전직공파(典直公派) : 허인부(許仁副)
  • 증성군파(甑城君派) : 허구년(許龜年)
  • 판서공파(判書公派) : 허언룡(許彦龍)
  • 상서공파(尙書公派) : 허상(許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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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유전(許有全, 1243년 ~ 1323년) : 1274년(고려 원종 15년) 문과에 급제하여 1314년(충숙왕 1)에 가락군(駕洛君)에 봉해지고 1321년 수첨의찬성사(守僉議贊成事)에 이어 정승이 되었다.[1] 시호는 충목(忠穆).
  • 허옹(許邕) : 허인전의 손자. 고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전리판서(典理判書)에 이르렀다.
  • 허추(許錘) : 허유전의 증손자. 1438년(세종 20년) 문과에 급제하여 우정언(右正言)과 사간원 좌헌납(司諫院左獻納)을 역임하였다. 제학공파(提學公派) 파조.
  • 허선(許譔) : 허추의 아들. 1456년(세조 2)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 예문관 검열, 장례원 사평(掌隷院司評), 성균관 학정, 병조정랑, 이조좌랑, 홍문관 직제학을 역임했으며 세조실록 편찬에 수찬관으로 참여하였다.
  • 허정(許禎) : 허선의 아들. 1494년(성종 25) 별시(別試)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지평, 청주목사(淸州牧使), 영천군수(永川郡守), 홍문관 직제학을 역임하였다.
  • 허백기(許伯琦, 1493 ~ ?) : 허정의 아들, 1519년(중종 14) 문과에 급제한 뒤 1524년 형조와 병조의 좌랑을 지내고, 1526년 형조정랑, 1528년 경상도 도사, 1541년 헌납·장령, 1544년 사간·교리·동부승지, 1545년 형조참의, 1553년(명종 8) 판결사를 지낸 다음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1562년 동지중추부사로서 관직에서 물러났다. 시호는 정헌(正憲).
  • 허수겸(許守謙, 1563 ~ ?) : 1588년(선조 21)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부여현감(扶餘縣監), 병조정랑, 강진현감(康津縣監), 공주목사 등을 지냈다.
  • 허위(許蔿) : 한말의 의병장. 3백명의 선발대로 일본 통감부를 격파하려다 실패하고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서대문 감옥에서 옥사했다.
  • 허만정(許萬正) : 독립운동가이자 LG그룹의 공동창업주이며, GS그룹의 뿌리이다.
  • 허정(許政) : 제6대 국무총리

집성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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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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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동항렬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36세 37세 38세 39세 40세 41세 42세 43세 44세 45세 46세 47세
우(遇)
만(萬)
구(九)
량(亮)
필(弼)
남(南)
행(行)
녕(寧)
성(成)
성(盛)
기(紀)
범(範)
용(庸)
강(康)
신(新)
재(宰)
정(廷)
병(秉)
발(發)
규(揆)
돈(敦)
학(學)
건(建)
숙(肅)
인(寅)
연(演)
경(卿)
흔(欣)
진(震)
근(根)
용(龍)
완(琬)
보(寶)
성(性)
업(業)
수(洙)
동(東)
중(重)
유(猷)
준(遵)
국(國)
기(璣)
현(鉉)
옹(甕)

조선 왕실과 인척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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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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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121,031명
  • 2015년 134,068명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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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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