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맹에 가입한 원래의 회원국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연합국과 국제연맹 가입을 권유받은 중립국을 합쳐 총 42개국으로 구성되었다(국제연맹 규약 제1조 제1항). 기타 국가나 완전한 자치를 하고 있는 영지(領地)·식민지는 국제적 의무를 성실히 지킨다는 확약과 군비에 관하여 연맹이 결정한 준칙을 수락한다는 전제하에 총회의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 회원국이 될 수 있었다(동 1조 2항). 이렇게 하여 가입한 회원국은 1920년에는 6개국, 1921년에는 3개국, 1923년에는 2개국, 1934년에는 회원국이 가장 많은 63개국으로 늘어났다.
회원국은 2년에 걸친 예고(豫告)를 통해 연맹을 탈퇴할 수 있었다. 단 탈퇴할 때까지 모든 국제적 의무와 국제연맹 규약상의 의무를 이행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했다(동 1조 3항). 이 규정에 따라 국제연맹을 탈퇴한 나라는 독일·이탈리아·일본 등 도합 17개국에 달하였고 다른 나라에 병합된 나라(오스트리아·알바니아), 제명된 나라(소련)를 제외하면 1939년 말에는 회원국이 45개국으로 감소되었다.[1]
국제연맹의 제창국으로 알려졌던 미국은 미국 의회의 반대로 인하여 끝내 국제연맹에 가입하지 않았다. 이는 국제연맹의 무력함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어서 제2차 세계 대전을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부실한 계기도 마련하였다.
체코슬로바키아는 1939년 3월 15일에 나치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면서 소멸되었으나, 1946년 국제연맹 해체 당시에는 명목상 회원국으로 남아 있었다.
알바니아는 1939년 4월 9일에 이탈리아 왕국이 알바니아를 침공하면서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이탈리아령 알바니아는 1939년 4월 13일에 국제연맹 탈퇴 통지 서한을 제출했으나, 국제연맹에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헝가리는 1939년 4월 11일에 헝가리계 인구 다수가 거주하는 지역을 다른 나라에 할양한 베르사유 체제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탈퇴했다.
스페인은 1926년 9월 8일에 탕헤르 국제 지대를 둘러싼 국제연맹과의 갈등으로 인하여 2년 뒤에 발효될 국제연맹 탈퇴 통지 서한을 제출했으나, 1928년 3월 22일에 철회했다. 그러나 1939년 5월 9일에 프랑코 정권이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한 이후에 국제연맹에서 탈퇴했다.
국제연맹 이사회는 1939년 12월 14일에 핀란드를 침공하여 겨울 전쟁을 일으킨 소련이 국제연맹 규약을 위반했다고 판단하고 소련을 국제연맹에서 제명하는 안건을 투표에 부쳤다. 투표 결과 찬성 7개국(영국, 프랑스, 벨기에, 볼리비아, 도미니카 공화국, 남아프리카 연방, 이집트 왕국), 반대 0개국, 기권 4개국(중화민국, 핀란드, 그리스, 유고슬라비아 왕국), 불참 3개국(이란, 페루, 소련)을 기록하여 가결되었다.
비시 프랑스는 1941년 4월 19일에 국제연맹 탈퇴 통지 서한을 제출했고, 국제연맹에서도 이를 인정했다. 그러나 자유 프랑스는 비시 프랑스의 국제연맹 탈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1943년 4월 15일에는 앙리 지로 장군이 이 성명을 국제연맹 감독위원회에 전달했고, 같은 해 4월 16일에는 샤를 드골 장군이 이 성명을 국제연맹 사무총장에게 전달했다. 이에 따라 국제연맹은 자유 프랑스, 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와의 서신을 통해 프랑스의 국제연맹 탈퇴 결정을 무효로 한다고 밝혔다.
미국: 미국은 국제연맹 규약 부속서에 기재된 창립 회원국이었기 때문에 미국 의회의 비준을 받았다면 상임이사국 자격을 가진 국제연맹 회원국이 될 수 있었다. 미국 상원은 1920년 3월 19일에 국제연맹 규약 비준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찬성 49표, 반대 35표를 기록하여 정족수인 2/3에 미달하여 부결되어 가입이 무산되었다.
헤자즈 왕국: 헤자즈 왕국은 국제연맹 규약 부속서에 기재된 창립 회원국이었으나, 후세인 빈 알리 국왕이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귀환을 장려하는 내용을 담은 밸푸어 선언에 항의하는 표시로 국제연맹 규약 비준을 거부하여 가입이 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