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중공업, 엘에스(LS)일렉트릭, 일진전기 등 10개 사업자가 7년여 동안 한국전력공사가 발주한 입찰에서 짬짜미를 했다가 적발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모두 39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담합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6개 사업자는 고발 조처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한국전력공사가 2015년 3월∼2022년 9월 발주한 134건의 ‘가스절연개폐장치’ 입찰에서 10개 사업자가 담합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29일 밝혔다. 담합이 발생한 134건의 입찰 금액 규모만 5600억원에 이른다. 가스절연개폐장치는 발전소와 변전소의 과도한 전류를 빠르게 차단해 전력 설비를 보호하는 필수 전기 장치다.
담합에 가담한 사업자는 효성중공업·일진전기·엘에스일렉트릭·에이치디(HD)현대일렉트릭 등 대기업 4곳과 동남·제룡전기 등 중소기업 5곳, 그리고 변압기와 차단기 등을 제조하는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한국중전기사업협동조합(이하 중전기조합)이다.
당초 대기업 4곳만 참여했던 관련 입찰에 중소기업 등이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담합 행위가 이뤄졌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다. 동남이 중소기업으로는 처음 2014년 10월 입찰에 참여하면서 저가 입찰 경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저가 입찰 경쟁을 자제하고 물량을 나누기로 담합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다른 중소기업들도 입찰 자격을 얻은 뒤 차례로 담합에 동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물량 배분 비율을 정하고, 합의된 순번대로 물량을 낙찰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에는 대기업 87%와 중소기업 13%으로 물량을 나눴는데, 입찰에 참여하는 중소기업이 늘면서 최종적으로 ‘55 대 45’까지 비율이 조정됐다.
짬짜미를 통해 낙찰 가격이 높게 책정된 정황도 드러났다. 담합 기간 동안 이들은 발주처(한국전력)이 제시한 기준 가격에 거의 근접한 96.2%로 낙찰을 받았는데, 담합 행위에 대한 조사가 개시된 뒤 입찰에서는 그 비율이 73.7%로 크게 떨어졌다. 담합이 없는 입찰 경쟁에서는 한국전력이 기준 가격을 100원으로 제시하면 70원대까지 가격 경쟁이 벌어졌는데, 담합 체제에서는 90원대에 사업을 수주하며 부당한 이득을 취한 셈이다.
특히 이들은 담합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총무 기업’을 정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중간 연락책으로 삼은 것으로 조사됐다. 일진전기, 엘에스일렉트릭이 대기업군, 제룡전기와 중전기조합이 중소기업군의 총무를 맡았다. 총무 역할을 맡지 않은 기업들은 소속 기업군의 총무 기업을 통해서만 정보를 주고받았다.
공정위는 이들의 행위를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물량 담합’으로 판단하고, 과징금 391억원을 부과했다. 효성중공업 112억3700만원, 일진전기 75억2천만원, 엘에스일렉트릭 72억3900만원, 현대일렉트릭 66억9900만원 등이다. 공정위는 담합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판단한 대기업 4곳과 제룡전기, 중전기조합은 검찰에 고발했다.
황원철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공기업 발주 입찰에서 경쟁을 완전히 제거해 공기업의 비용을 증가시켰고, 이는 결국 공공요금 원가 인상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