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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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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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 |
본명 | 조순창(趙純昌) → 조광철(趙光喆) |
출생 | 1891년 10월 26일 조선 평안도 의주군 고성면 태산리 540번지 |
사망 | 1951년 5월 11일 대한민국 경상남도 부산시 | (59세)
거주지 | 일제 강점기 조선 평안북도 의주군 고성면 대산동리 |
국적 | 대한민국 |
본관 | 평양(平壤) |
직업 | 항일 독립 운동가 |
활동 정보 | |
관련 활동 | 독립운동 |
활동 기간 | 1919년 3월~1920년 7월 |
주요 활동 | 1919년 3월 평북 의주 대한 독립 만세 운동 등에 앞장 섬. |
경력 | 1919년 3월 17일, 평안북도 의주 대한 독립 만세 운동 참가. |
상훈 |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2006년 3월 1일) |
웹사이트 | 조광철 : 독립유공자 공훈록 - 국가보훈처 |
조광철(趙光喆, 1891년 10월 26일~1951년 5월 11일)은 대한민국의 항일 독립 운동가이고, 1891년 평안도 의주군 고성면 태산리 540번지 생이다.
생애
[편집]1891년 10월 26일조선 평안도 의주군 고성면 태산리 540번지에서 조순창(趙純昌)이라는 이름으로 출생했고, 1895년(5세 때)에 조광철(趙光喆)로 개명(改名)했다.
,1919년 3월 17일평안북도 의주(義州)에서 대한 독립 만세 운동 등을 전개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당시,조광철은 1919년 3월 17일 평북 의주군(義州郡)의 고성면(古城面)의 대산동리(臺山洞里)에서 전개된 대한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를 주도한 서당 강사 이영수(李永秀)가 일경에 잡혀가자 조광철은 이에 항의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주재소까지 행진하였다.
결국 이로 인해 체포된 조광철은 1919년 7월 10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4개월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여 1920년 7월 20일 만기출감했다.
1945년 8월 15일 을유 해방 이후 이듬해 1946년 6월에 경남 부산으로 월남했고, 1951년 5월 11일, 한국 전쟁이 1년째 한창일 당시에 경남 부산에서 폐렴으로 죽었다.
사후
[편집]-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고자 2006년 3월 1일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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