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빈 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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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빈 민씨
靜嬪 閔氏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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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의 후궁 | |
신상정보 | |
출생일 | 1567년 9월 29일(음력) |
사망일 | 1626년 11월 2일(음력) | (59세)
가문 | 여흥 민씨 |
부친 | 민사준 |
모친 | 신창 맹씨 |
배우자 | 선조 |
자녀 | 2남 3녀
인성군 · 인흥군 정인옹주 · 정선옹주 · 정근옹주 |
정빈 민씨(靜嬪 閔氏, 1567년 음력 9월 29일 ~ 1626년 음력 11월 2일)[1]은 선조의 후궁으로 본관은 여흥이다.
생애
[편집]강화도호부사 민사준(閔士俊)의 딸로 성종의 사위인 여천위(驪川尉) 민자방의 증손녀이다.[1][2]
1580년(선조 13년) 음력 5월 26일 종2품 숙의(淑儀)로 정식 간택되어 입궁하였다.[3] 이때 간원이 민씨의 출신이 성종의 외손 집안이니 선발에서 제외하라고 간하였지만 선조가 윤허하지 않았다.[4] 이때 홍여겸(洪汝謙)의 딸(정빈 홍씨), 정순희(鄭純禧)의 딸(숙의 정씨)과 함께 숙의가 되어 입궁하였으며 민씨는 수진방(水眞坊)에 있는 궁으로 옮겨졌다.[5] 이후 소의, 귀인을 거쳐 정1품 빈(嬪)에 봉해졌다. 선조와의 사이에서 인성군 외에 딸 셋과 아들 둘을 낳았다.
선조 승하 후에 사가에 머물었는데, 이때부터 고질병을 앓아 인목왕후가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고 위로하였다.[1]
장남인 인성군이 1624년 역모에 연루되어 유배되었고, 정빈 민씨가 병이 들어 위독하자 인흥군은 인조에게 상소하여 형인 인성군이 어머니를 만나게 해줄 것을 청하였다.[1] 인조는 인성군이 민씨를 만날 수 있도록 풀어주었으나[6] 1626년 11월 2일, 민씨는 인성군이 한성에 도착하기 전에 죽었다.[7]
1627년 1월 17일, 양주 탑곡에 예장하였다.
묘소
[편집]묘소는 경기도 의정부시의 천보산에 있다. 아들 인성군, 손자 해원군, 증손자 화릉군ㆍ화창군ㆍ화춘군도 묻혀있다.
가족 관계
[편집]- 증조부 : 여천위 민자방(驪川尉 閔子芳)
- 증조모 : 경숙옹주(敬淑翁主, 1483 ~ ?)
- 조부 : 민희열(閔希說, 1510 ~ ?)
- 조모 : 전주 이씨 - 이의번(李義蕃)의 딸
- 아버지 : 민사준(閔士俊, 1537 ~ ?)
- 어머니 : 신창 맹씨(新昌 孟氏) - 맹익선(孟益善)의 딸
- 서모 : 귀옥(貴玉) - 양민 출신
각주
[편집]- ↑ 가 나 다 라 〈정빈여흥민씨묘지(靜嬪驪興閔氏墓誌)〉
- ↑ 《미수기언》 기언별집 구묘문(丘墓文)
- ↑ 《조선왕조실록》 선조 13년(1580 경진 / 명 만력(萬曆) 8년) 5월 26일(갑오) 1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 선조 14권, 13년(1580 경진 / 명 만력(萬曆) 8년) 5월 27일(을미) 1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 선조 14권, 13년(1580 경진 / 명 만력(萬曆) 8년) 5월 26일(갑오) 2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 인조 14권, 4년(1626 병인 / 명 천계(天啓) 6년) 11월 1일(경오) 2번째기사
- ↑ 《국역 국조인물고》 권5 국척(國戚) 이공의 묘지(墓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