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순
이응순(李應順, 1565년 - ?)은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이며,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한 공로로 호성공신 3등관에 녹훈되었다. 본관은 원주(原州)이고 자는 선수(善受)이다. 형제 공신인 이응인(李應寅)의 형이다.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때의 호종공신 1등관인 왕족 파흥군 이응순과는 동명이인이다.[1] 생전에 익흥군(益興君)에 봉군되었고, 사후에 부원군에 추봉되어 익흥부원군(益興府院君)이 되었다. 강원도 출신.
생애
[편집]익흥군 이응순은 1565년 강원도 원주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 행첨지중추부사(行僉知中樞府事)와 가선대부(嘉善大夫) 행부호군(行副護軍)을 지낸 이욱(李旭)의 아들로 태어났다. 함께 임진왜란 당시 공을 세운 이응인은 2년 터울의 동생이었다.
1589년(선조 22년) 증광 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2]
두 형제가 선전관으로 선조 임금을 보필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고 선조가 몽양갈 때 형 이응인과 함께 선조를 호종하였다. 어가가 위주로 몽진할 때 안주 청천강이 홍수로 범람하여 도강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 홍수 속에서 형은 임금을 업고 동생은 뒤를 받치며 무시히 청천강을 건넜다. 이 무렵 이응인은 왜병과 싸우다가 왜병의 칼에 귀가 잘리고 어깨에 심한 부상을 당했다. 유혈이 낭자하니 선조가 어의(御依)의 소패폭을 뜯어 상처를 싸매주면서 “경들의 충정이 이와 같은진대 불천지위(不遷之位:공훈이 큰 이로써 영구히 사당에 모시도록 나라에서 허락한 神位)의 영예를 허락하노라” 하였다. 정유재란이 종결되자 호성공신 3등관에 책록되고 익흥군(益興君)에 봉해졌으며, 내금위장(內禁衛將), 오위도총부 도총관, 훈련원도정(訓鍊院都正) 등을 거쳐 자헌대부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사후
[편집]사후 충근정량호성공신(忠謹貞亮扈聖功臣) 3등관으로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의정(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左議政) 겸 영경연사(領經筵事)에 추증되고 부원군에 추봉되어 익흥부원군(益興府院君)이 되었다. 묘소는 강원도 원성군 판부면 내남송(현 원주시 판부면)에 안장되었다.
가족 관계
[편집]- 아버지 : 이욱(李旭)
- 부인 : 본관 미상
기타
[편집]동생인 이응인 역시 1592년 무과에 등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