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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항 봉쇄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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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항 봉쇄 작전은 유엔 해군이 1951년 2월 16일부터 정전 때까지 원산항 항만을 봉쇄한 작전으로 소련에서 북한으로 이어지는 해상 보급로를 완전히 차단했다. 북한군의 최대의 보급로인 동해안 루트가 차단되었으며 원산항을 탈환하기 위해 수많은 병력을 투입해야만 했기 때문에 전선의 UN군의 부담을 크게 덜어 주었다.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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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의 인해전술로 UN군은 1951년 1.4후퇴를 한다. 하지만 UN군은 후퇴를 하면서도 다시 북한지역으로 진격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특히 해군은 지상군의 후퇴와 상관없이 바다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상군의 재반격과 북진을 대비하여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전략적 요충지는 진남포 입구의 초도, 장산곶을 감시할 수 있는 백령도 등 원산만 일대의 여러 섬들이 지정되었다. 따라서 각 도서에 한국 해병을 1~2개 중대씩을 투입하여 점령하고 UN군이 재반격할 때까지 기다리며 지상군을 작전을 지원할 때까지 기다린다.

특히 원산항은 동부전선에서 UN군이 다시 북진할 때 필수적인 보급항구였기 때문에 점령하여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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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2월에 미군은 원산만 일대에 7개 도서를 우선적으로 점령한다는 계획을 세워 작전을 개시한다. 2월 16일에 미 해군 구축함 2척이 원산항에 진입하여 주요 시설에 대한 함포사격으로 방해물을 제거한 뒤 1주일이 지난 2월 24일 상륙전을 시작한다.

2월 24일 07:00부터 미 해군의 함포사격이 신도를 향해 2시간 동안 쏟아졌고, 한국 해병대 200명이 상륙하여 점령한다. 신도를 시작으로 원산만 최대의 섬인 여도를 점령하고 뒤이어 태도, 모도, 소토도, 황토도를 점령한다.

이로 인하여 원산항은 봉쇄되었고 항만시설, 철도, 북한 군 병영 등이 모두 파괴된다.

북한군은 소형 어선을 통한 기습상륙 작전으로 탈환을 시도하지만 1951년 11월 28일 황토도에 상륙 성공한 사례를 제외하고 미 해군에 의해 저지된다.

그러는 동안 미군은 원산항에 대하여 공격을 더 감행하여 원래는 구축함이 담당하던 포격에 순양함이 가세하고 3월 19일에는 USS미주리가 16인치 주포를 쏟아부었다. 북한군은 이에 대항하여 해안포대를 강화하고 기뢰를 부설하려는 시도를 하였지만 기뢰부설선들은 격침당했고 설치된 기뢰들은 미국의 소해함들에 의해 소해되었다.

하지만 미 해군이 기대한 지상군의 재반격 및 북진 소식이 없었다. 전선은 서울 이북에서 고착되었고 UN군과 공산군은 서로 대치전 및 고지점령전만 반복하였다. 따라서 원래 목표였던 지상군의 북진 지원에서 후방 교란 및 항만/보급 봉쇄, 적 지상군의 유인 등으로 변하게 되었고 지상군이 북진할 때까지 주둔할 예정이었던 해병대는 차츰 장기화, 영구 주둔화되었고 미 해병대도 일부 가세함에 따라 병력도 증강되었다.

미 해군은 점령지를 지키고 원산을 포격하기 위해 최소 구축함 2척을 계속 원산만에 상주시켰고 여도에 대규모 탄약고 및 등대, 탐조등을 설치하며 영구주둔을 생각한다. 미군은 북한군이 이엗 대비하기 위해 원산항에만 최소 1000문 이상의 포를 배치한 것으로 판단하였으며 이는 북한의 힘을 뺐다. 하지만 이러한 북한의 노력은 실패하여 미 해군은 단 1척의 함정도 잃지 않았고 오히려 호도반도와 갈마반도에 제압 포격을 가하여 북한군 해안포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원산만 도서 점령의 효과로는 북한군 동부전선의 동해안 루트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북한이 이들 도서들을 탈환하기 위해 수많은 병력을 투입해야만 했고 나중에는 원산 상륙전을 대비하여 병력들을 전선에 투입하지 못하고 원산에 배치시켜 전선의 UN군 부담을 크게 덜어주었다.


1953년 7월 7일 휴전협령이 발표되면서 주둔했던 한미 해병대도 철수한다. 미 해군은 마지막 날까지도 22:00까지 원산항에 포격을 퍼부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으로 인한 철수까지 총 861일 동안 UN군은 원산항을 완전히 봉쇄하였으며 북한군의 전력을 어느 정도 분산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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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해전사 (Malcolm W Cagle, Frank A Manson, 21세기 군사연구소.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