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트 피아프
에디트 피아프 Édith Pia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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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에디트 조반나 가시옹 Édith Giovanna Gassion |
출생 | 1915년 12월 19일 프랑스 파리 벨빌 |
사망 | 1963년 10월 11일 알프마리팀주 그라스 | (47세)
성별 | 여성 |
국적 | 프랑스 |
직업 | 가수 |
장르 | 카바레 토치송 샹송 뮤지컬 |
활동 시기 | 1935년 ~ 1963년 |
웹사이트 | 사이트 |
에디트 피아프(프랑스어: Édith Piaf, 본명은 에디트 조반나 가시옹(프랑스어: Édith Giovanna Gassion), 1915년 12월 19일~1963년 10월 11일)는 프랑스의 가수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고의 가수로 불린다.
에디트 피아프는 1915년 12월 19일 프랑스 파리의 가난한 노동자 구역인 베르빌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고, 아버지는 거리의 곡예사였다. 엄마 아네트는 삼류 가수로 여기저기에서 노래를 부르며 커리어를 쌓기를 원해 어린 딸을 부양할 수 없었다. 에디트는 알코올중독자인 외할머니한테 맡겨졌다. 그 후 친할머니에게 맡겨지면서 에디트는 창녀촌에서 유아 시절을 보낸다. 가난 때문에 키가 142cm 밖에 자라지 못했고, 영양실조와 시력을 잃을 위기에까지 처할 정도로 에디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1]
15세 때부터 골목을 누비며 노래를 불러 생활, '자니즈'라는 카바레의 가수가 되었으나 살인 사건에 말려들어 실의의 나날을 보냈다. 이윽고 주위의 격려를 받아 재기, 〈나의 병정 아저씨〉 등을 불러 성공하였다. 1940년에 장 콕토의 희곡을 홀로 연기하였다. 직접 작사한 〈장밋빛 인생〉, 〈사랑의 찬가〉 등을 불러 히트시켰으며, 《파리의 기사(騎士)》(1951년, ACC), 《파담 파담》(1952년, ADF)으로 디스크 대상을 획득하였다. 이브 몽탕을 비롯하여 많은 남성가수를 사랑하는 등 그 연애경력도 화려했으나 1952년부터 4년 동안은 가수인 자크 피르스와 결혼, 1962년에는 테오 사라포와 재혼하였다.[2]
대중 문화 속의 모습
[편집]그녀의 노래는 자신의 비극적인 삶의 반영이었고, 특기인 심금을 울리는 발라드는 애끓는 목소리로 가창되었다. 그녀가 남긴 주요곡으로는 "La Vie en rose"(→장밋빛 인생, 1946),"Hymne à l'amour"(사랑의 찬가, 1949), "Milord" (신사, 1959),"Non, je ne regrette rien" (→아니오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1960) 등이 있다.
피아프에 관한 영화
[편집]올리비에 다앙이 감독을 맡은 그녀의 일대기를 영화화한 《라비앙 로즈》가 2007년 2월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피아프 역을 맡은 마리옹 코티야르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각주
[편집]- ↑ “죽어서야 영원한 사랑을 한 ‘작은 참새’ 에디트 피아프” (신동아). 2012년 7월호에 확인함.
- ↑ '피아프 - 샹송', 《글로벌 세계 대백과》
참고 자료
[편집]외부 링크
[편집]- (영어) 에디트 피아프 -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