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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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명칭 | William A. Shea Municipal Stadi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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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명칭 | Shea Stadium |
별칭 | "Shea Stadium", "Shea" |
위치 | ![]() |
좌표 | 북위 40° 45′ 20″ 서경 73° 50′ 53″ / 북위 40.75556° 서경 73.84806° |
기공 | 1961년 10월 28일 |
개장 | 1964년 4월 17일 |
폐장 | 2008년 9월 28일 |
철거 | 2008년 10월 14일 ~ 2009년 2월 18일 |
소유 | 뉴욕 |
운영 | 뉴욕 시티 디퍼트먼트 오브 팍스 앤 레크레이션(1964년~1981년) 뉴욕 메츠(1981년~2008년) |
표면 | 천연잔디 |
규모 | 좌측 : 103m(338ft) 좌측 중앙 : 113m(371ft) 중앙 : 125m(410ft) 우측 중앙 : 113m(371ft) 우측 : 103m(338ft) |
수용 인원 | 야구 : 57,333명 미식축구 : 60,372명 |
사용처 | 뉴욕 메츠 (MLB) (1964년~2008년) 뉴욕 양키스 (MLB) (1974년~1975년) 뉴욕 제츠 (NFL) (1964년~1983년) 뉴욕 자이언츠 (NFL) (1975년) MLB 올스타전 (196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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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 스타디움(Shea Stadium)은 뉴욕 퀸스 플러싱 메도스 코로나 파크 북쪽에 있던 야구장이다. MLB 뉴욕 메츠의 옛 홈구장이며, 1974년부터 1975년까지 뉴욕 양키스가 임시 홈구장으로 사용했지만, 이것은 양키 스타디움 보수 공사에 따른 것이다. 구장 명칭은 구단 유치에 큰 공을 세운 윌리엄 셰이 변호사의 이름을 딴 것이다. 시티 필드로 이전 후 철거되어 주차장이 들어섰다.
역사
[편집]1958년 다저스와 자이언츠가 뉴욕을 떠나자, 뉴욕 시민들의 허탈감은 대단했다. 이에 변호사 윌리엄 알프레드 셰이는 뉴욕에 제2의 구단을 유치하기로 결심했다. 신시내티 레즈 ·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 필라델피아 필리스 중 한 구단을 끌어오려는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셰이는 브랜치 리키와 함께 제3의 메이저리그인 컨티넨탈 리그의 창설을 도모했다. 이에 내셔널리그는 1961년 뉴욕 메츠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리그 참가를 승인하며 경쟁 리그의 출범을 막았다.[1]
1962년부터 리그에 참가한 메츠는 뉴욕 자이언츠의 홈구장이었던 폴로 그라운드를 사용했다. 메츠는 폴로 그라운드에서 1시즌을 보낼 계획이었지만 새 구장의 공사가 지연되면서 1년을 더 있어야만 했다. 마침내 1964년 4월, 총공사비 2850만 달러 · 공사기간 29개월이 소요된 셰이 스타디움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당초의 이름은 플러싱 미도우 파크였지만, 윌리엄 셰이의 업적을 기려 셰이 스타디움으로 명명됐다.[1]
각주
[편집]- ↑ 가 나 “[MLB] 구장분석 (15) - 셰이 스타디움”. 《중앙일보》. 2002년 2월 25일. 2017년 4월 2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4월 28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편집]위키미디어 공용에 셰이 스타디움 관련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 개최 경기장 | ||
1963년 | 1964년 셰이 스타디움 |
1965년 |
클리블랜드 스타디움 |
메트로폴리탄 스타디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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