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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레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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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장소로 추정되는 자우니우나이(Jauniūnai) 근처

사울레 전투(리투아니아어: Saulės mūšis / Šiaulių mūšis, 독일어: Schlacht von Schaulen, 라트비아어: Saules kauja, 영어: Battle of Saule)는 1236년 9월 22일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과 사모기티아인과 세미갈리아인의 이교도 군대 사이에서 벌어졌다. 리보니아 마스터 볼크윈(Volkwin)을 포함하여 48~60명의 기사가 사망했다. 이는 발트해 지역에서 명령이 겪은 최초의 대규모 패배였다.[1] 발트해 지역에 설립된 최초의 가톨릭 군사 조직인 검형제(Sword-Brothers)는 대패했고 그 잔당은 1237년에 튜턴 기사단에 편입되었다. 이 전투는 이전에 검형제에 정복되었던 부족인 쿠로니안(Curonians), 세미갈리아인(Semigallians), 셀로니아인(Selonians) 및 오셀리아인(Oeselians) 사이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다우가바강 좌측 강둑에서 약 30년간의 정복이 역전되었다.[2] 이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2000년 리투아니아라트비아 의회는 9월 22일을 발트해 통일의 날로 선포했다.[3][4]

같이 보기

[편집]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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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aranauskas, Tomas (2006년 9월 22일). “Ar priminsime Europai apie Šiaulių mūšį?” (리투아니아어). Delfi.lt. 2021년 3월 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7년 5월 9일에 확인함. 
  2. Jonas Zinkus; 외., 편집. (1987). 〈Saulės mūšis〉. 《Tarybų Lietuvos enciklopedija》 (리투아니아어) 3. Vilnius: Vyriausioji enciklopedijų redakcija. 633쪽. 
  3. “Lithuania and Latvia celebrate Baltic Unity Day”. Baltic News Network. 2015년 9월 19일. 2021년 5월 2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9월 22일에 확인함. 
  4. “Latvians, Lithuanians remember victory over crusaders”. Public Broadcasting of Latvia. 2018년 9월 22일. 2021년 1월 2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9월 22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