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진론
보이기
북진론(일본어:
북진론은 막말의 개명파 다이묘 나베시마 나오마사가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하고 이를 위해 수도를 아키타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 데 기원을 둔다. 메이지 시대 초기에 북진론은 청일전쟁에서 한반도와 요동반도를 제압한 후 발해만 연안에 상륙, 북경을 직접 침공하는 것을 의미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동아동문회나 대러동지회를 통해 북진론이 정책화되어간다. 또 재야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낭인 단체를 인솔하던 우치다 료헤이 등이 북진론을 주장했다.
만주사변 이후 만주국 이북 소련을 침공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이것이 일본 육군, 특히 관동군의 사상적 이념으로 자리잡았다. 그 결과 1938년 장고봉 사건, 1939년 노몬한 사건 같은 대형 군사분쟁이 일어났다(소일 국경분쟁).
같이 보기
[편집]이 글은 군사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