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루 (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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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
夫婁 扶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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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왕? | |
재위 | 기원전 2100년~기원전 2000년? |
대관식 | 부루(夫婁) |
전임 | 단군(檀君) |
후임 | 단부여(檀夫餘) |
부왕 | 단군(檀君) |
이름 | |
휘 | 단부루(檀夫婁) |
이칭 | 미상 |
별호 | 미상 |
묘호 | 부루(夫婁) |
시호 | 미상 |
연호 | 미상 |
신상정보 | |
출생일 | 생년 미상(生年 未詳) |
출생지 | 미상 |
사망일 | 몰년 미상(沒年 未詳) |
사망지 | 미상 |
왕조 | 고조선(古朝鮮) |
가문 | 미상 |
부친 | 단군(檀君) |
모친 | 하씨(河氏) 하백(河伯)의 딸 삼국유사(三國遺事) |
배우자 | 미상 |
자녀 | 미상 |
종교 | 미상 |
묘소 | 미상 |
부루(夫婁 또는 扶婁)는 고조선(古朝鮮)을 건국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아들로 전해지는 인물이다.
개요
[편집]한국의 전설 상의 인물로 단군의 태자이다. 하백의 딸과 결혼한 단군이 낳은 아들이 부루이다. 전설에 따르면 하나라 우(禹) 임금이 황하의 치수를 맡아 수토(水土)를 평정하고 제후들을 모아 도산(塗山)[1]에서 회합할 때에, 단군왕검은 태자 부루를 도산에 보내서 우 임금에게 조회하였다고 한다.[2] 고려 말 안향(安珦)이 지은 시 〈충선왕을 시종하여 연경에 가는 감회〉에도 부루가 도산에서 우 임금에게 옥 폐백을 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도교 계통으로 전해지는 신화인 당장경 천도는 더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단군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이 부루(夫婁), 부여(夫餘), 부우(夫虞), 부소(夫蘇)로서 각기 뛰어난 재주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장남인 부루(夫婁)는 하나라의 우 임금이 도산에서 제후들을 소집했을 때 알현하러 갔고, 부여(夫餘)는 '구이설유의 난'이 일어나자 평정하였으며, 부우(夫虞)는 나라에 질병이 돌면 의약을 마련하여 백성들을 구제하였고, 부소(夫蘇)는 산에 맹수가 들끓었을 때 사냥을 하여 퇴치하였다고 한다.[3][4]
부루는 부여의 왕 해부루와 이름이 같으며, 이로 인해 《삼국유사》, 《응제시주》 등에서는 두 사람을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한다. 한편 《규원사화》 및 《환단고기》 등에서는 고조선의 군주로 여러 명의 단군을 기록하고 있는데, 부루는 2대 단군의 이름이다.
가계
[편집]각주
[편집]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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