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윤
방륜(方輪, 1464년 ∼ 1534년)은 조선의 무신이다. 본관은 온양(溫陽). 자(字)는 중여(仲與), 호는 송강(松江)이다. 계림군(雞林君)에 봉군되고,[1] 종2품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하였다. 아들 방호의는 지돈녕부사에 이르렀다.
생애
[편집]1464년(조선 세조 9년) 증 병조참판 방계화(方季和)의 아들로 태어났다.
1491년(조선 성종 22년) 무과에 급제하여, 오위(五偉)에 배속(配屬)되었다가 강계판관(江界判官)으로 배수(拜搜)되었다.
1501년(연산군 7년) 영의정 한치형에게 발탁되었다.
1505년(연산군 11년) 내직으로 군기시부정(軍器侍副正), 도총부경력(都摠府經曆)을 역임한 후 갑산부사(甲山府使)로 나갔다.
1506년(조선 중종 1년) 승차되어 함경도 병마우후(兵馬虞候)를 제수받았으며, 누차(累次) 공로(功勞)를 쌓아 주비(朱緋)를 하사(下賜)받고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1507년(중종 2년) 포도 순검사(捕盜巡檢使)로 황해도(黃海道)에 파견되어 도적을 수포(搜捕)하였다.[2]
1512년(중종 7년) 외직으로 김해부사(金海府使)에 임명되었다가 방윤(方輪)의 무재가 탁월하고 성품이 또한 청렴 결백하다 하여 내직으로 돌아왔다.[3] 이어 충청도 절도사가 되었다.
1515년(중종 10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가 되어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부총관(副摠官)을 겸직하였다.
계림군(雞林君)에 봉군되고, 1521년(중종 16년) 평안도 병마·수군 절도사(平安道兵馬水軍節度使)로 임명되었다.[1]
1524년(중종 19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4]
1526년(중종 21년) 전라도병마절도사(全羅道兵馬節度使)에 제수되었다.[5]
1528년 다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었다.[6]
1531년(중종 26년) 함경북도 절도사(咸鏡北道節度使)로서 도시(都試)에서 자신의 아들인 방호례(方好禮)를 1등으로 선발한 일로 파직되었다.[7]
곧 다시 복직하여 1532년(중종 27년)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8]
1534년(중종 29년) 평안도 절도사(平安道節度使)에 이르렀다.[9]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증직되었으며, 묘는 경기도 동두천시 생연동(황말음리)에 있다.[10]
가족 관계
[편집]각주
[편집]- ↑ 가 나 《중종실록 42권, 중종 16년 8월 26일 을사 2번째기사》.
- ↑ 《중종실록 4권, 중종 2년 10월 23일 계사 3번째기사》.
- ↑ 《중종실록 15권, 중종 7년 1월 15일 신유 5번째기사》.
- ↑ 《중종실록 50권, 중종 19년 5월 2일 병인 1번째기사》.
- ↑ 《중종실록 56권, 중종 21년 2월 10일 계해 2번째기사》.
- ↑ 《중종실록 61권, 중종 23년 4월 5일 병오 2번째기사》.
- ↑ 《중종실록 71권, 중종 26년 윤6월 22일 갑진 1번째기사》.
- ↑ 《중종실록 73권, 중종 27년 5월 3일 경술 1번째기사》.
- ↑ 《중종실록 76권, 중종 29년 1월 21일 무오 2번째기사》.
- ↑ 《동두천시 30년사》 (PDF). 제7권 34장 동두천의 인물. 194쪽. 2015년 4월 16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4월 9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