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화
보이기
박지화(朴枝華, 1514년~1592년)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다. 본관은 정선, 자는 군실(君實), 호는 수암(守菴)이다.[1] 정선 박씨의 시조이다.
이력
[편집]서얼 출신으로,[2] 화담 서경덕의 제자였으며, 스승 밑에서 《주역》을 배웠다.[1][3] 현감 벼슬을 지냈다고 하나 자세한 일생은 알 수 없다. 유교·불교·도교에 모두 조예가 깊었다고 하며, 남인의 영수 허목의 아버지인 허교가 박지화의 제자이다.[4]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9세의 박지화는 피난 중에 백운산에서 일본군에게 포위되었고, 절명시를 남기고 계곡에 투신자살했다. 청안의 구계서원에 봉향되었다. 저서로 《수암유고》가 있다. 유신환의 기록에 따르면, 그의 자손들은 청안(淸安: 오늘날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과 전의(全義: 오늘날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살았다고 한다.[1]
- 본인: 박지화
- 아내: 홍씨(洪氏)
- 맏아들: 박진(朴震) - 훈도(訓導)
- 손자: 박홍연(朴弘衍) - 훈도(訓導)
- 둘째 아들: 박제(朴霽) - 봉사(奉事)
- 손자: 박홍윤(朴弘允) - 인의(引儀)
- 맏딸 사위: 봉사(奉事) 민우성(閔友誠)
- 둘째 딸 사위: 판관(判官) 이응홍(李應泓)
- 맏아들: 박진(朴震) - 훈도(訓導)
저서
[편집]- 《수암유고》
- 《사례집설》(四禮集說)[6]
전기 자료
[편집]- 유신환, 《봉서집》 권7, 수암 박공 묘지
- 허목, 《기언 별집》 권26, 박수암의 사실
각주
[편집]이 글은 한국 사람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