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영
황보영
皇甫穎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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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어사잡단 | |
임기 | 1031년~1031년 |
국왕 | 고려 덕종 |
신상정보 | |
출생일 | 미상 |
출생지 | 미상 |
사망일 | 1047년 |
사망지 | 미상 |
국적 | 고려 |
성별 | 남성 |
황보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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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표기: | 황보영 |
한자 표기: | 皇甫穎 |
개정 로마자 표기: | Hwangbo Yeong |
매큔-라이샤워 표기: | Hwangpo Yŏng |
예일 표기: | Hwangpo Yeng |
생애
[편집]1023년(현종 14) 음력 10월 11일(양력 11월 26일)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에 임명되었다.[1]
1031년(덕종 즉위년) 7월 어사잡단(御史雜端)이 되고, 9월 어사중승(御史中丞)이 되어 김영기(金令器)·이자연(李子淵) 등과 함께 비어(鯡魚)를 하사받았다.[2]
1032년 상서우승 지어사대사(尙書右丞知御史臺事)가 되었다.[3]
1034년 중추부사가 되었다.
1035년 음력 7월 13일(양력 8월 18일) 중추사(中樞使) 겸 어사대부(御史大夫)가 되었다.
1036년 음력 8월 17일(양력 9월 9일) 병부상서(兵部尙書)가 되었다.[4]
1041년 음력 10월 5일(양력 11월 1일) 서경유수사 참지정사(西京留守使參知政事)로서 대동강에서 어가(御駕)를 영접하였다.[5]
1041년 음력 10월 23일(양력 11월 19일) 수사공 좌복야(守司空左僕射)가 되었다.[6]
1043년(정종 9) 내사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 상주국(內史侍郎同內史門下平章事上柱國)으로 임명되었다.[7]
1047년(문종 1)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로서 왕에게 “저는 후사가 없으니 외손(外孫) 김록숭(金祿崇)을 후사로 삼도록 간청합니다.”라고 글을 올려, 김록숭에게 9품 관직을 주게 하였다.[8]
1047년 음력 10월 3일(양력 10월 24일)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치사(致仕)한 황보영(皇甫穎)이 별세하자,[9] 국왕인 문종이 부의로 쌀 100석, 보리 50석, 베 400필, 대차(大茶) 300근, 향(香) 10근을 내려주었다.[10]
각주
[편집]- ↑ 《고려사》 권5 세가 권제5 현종(顯宗) 14년 10월
- ↑ 《고려사》 권5 세가 권제5 덕종(德宗) 즉위년 9월
- ↑ 《고려사》 권5 세가 권제5 덕종(德宗) 원년 8월
- ↑ 《고려사》 권6 세가 권제6 정종(靖宗) 2년 8월
- ↑ 《고려사》 권6 세가 권제6 정종(靖宗) 7년 10월
- ↑ 《고려사》 권6 세가 권제6 정종(靖宗) 7년 10월
- ↑ 《고려사》 권6 세가 권제6 정종(靖宗) 9년 2월
- ↑ 《고려사》 권7 세가 권제7 문종(文宗) 원년 3월
- ↑ 《고려사》 권7 세가 권제7 문종(文宗) 원년 10월
- ↑ 《고려사》 권64 지 권제18 예6(禮 六) 흉례 제신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