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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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환선길(桓宣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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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 | 없음 |
별명 | 없음 |
시호 | 없음 |
출생일 | 868년 |
출생지 | 미상 |
사망일 | 918년 7월 29일 |
사망지 | 미상 |
가문 | 평양 환씨 |
부친 | 환씨(桓氏) |
모친 | 미상 |
배우자 | 부인 이씨(婦人 李氏) |
자녀 | ? |
종교 | 불교(佛敎) |
환선길(桓宣吉, 868년~918년 7월 29일) 왕건이 궁예를 축출하여 태봉을 멸망시키고 고려를 건국한 이후 왕건에게 반란을 일으킨 장군이다.[1]
궁예의 부하로서 용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정변이 성공하면 높은 벼슬을 주겠다는 왕건의 꼬임에 넘어가 궁예 축출 정변에 가담하여서 성공했지만,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후 그를 제거하려 하자 왕건을 시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복지겸의 밀고로 병사들에게 잡혀 아내와 함께 처형당했다.
생애
[편집]동생 환향식(桓香寔)과 함께 태조 왕건을 섬기고 추대한 공이 있었으며 마군장군(馬軍將軍)으로서 태조 왕건의 심복이 되어 항상 정예군을 이끌고 숙위(宿衛)하였다. 그의 아내가 당신의 재력(才力)은 남보다 뛰어나서 사졸이 복종하고 또 큰 공이 있으나 정병(政柄) (정권)은 다른 사람에게 있으니 어찌 한탄스럽지 않으랴 하니 병사와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키려 하였다. 복지겸(卜智謙)이 이를 밀고하였으나 형적(形跡)이 나타나지 않자 가만 두었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즉위한 지 4일 만에 50여 명을 이끌고 내정(內庭)에 침입하였으나 태조 왕건의 태연함에 복병이 있는 줄 알고 의심하여 달아나다가 위사(衛士)에게 잡혀 죽었다. 그의 나이 51살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