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로, 80년대 학생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1985년 4월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홍보용 벽보와 유인물을 통해 "양키는 집으로 돌려보내져야 한다" "핵기지가 철수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1985년 5월 서울대학교 삼민투 위원장으로서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사건을 주도하고 투옥되었다.[1][2]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원주교도소에 수감중이던 1987년 7월 21일 교도소 면회실에서 면회도중 아크릴판을 깨 동맥절단 소동을 벌인뒤 25일까지 단식농성을 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법무부 교정관계자는 "최근의 구속자 석방 조치이후 원주교도소에 수감중인 시국관련 피고인들을 다른 교도소로 이송하자 강제이송이라고 주장하며 이같은 소동을 벌이고 단식하다 25일밤 변호인을 면회하고 난 뒤에 단식을 중단했다"고 하면서 "함운경은 이 소동으로 팔이 약간 긁힌 정도의 상처를 입었을 뿐이며 동맥절단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