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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멜란히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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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멜란히톤
Philipp Melanchthon
본명필리프 슈바르츠에르트
출생1497년 2월 16일
브레텐
사망1560년 4월 19일
비텐베르크
성별남성
국적독일
직업신학자, 종교개혁가
소속비텐베르크 대학교
종교개신교
필리프 멜란히톤

필리프 멜란히톤(독일어: Philipp Melanchthon, 독일어 발음: [meˈlançtɔn], 본성: 슈바르츠에르트·Schwartzerdt, 1497년 2월 16일 브레텐 ~ 1560년 4월 19일 비텐베르크)은 독일신학자이자 종교개혁가이다.[1]

루터종교 개혁 운동의 동료로서 종교개혁운동을 통한 복음주의의 확립을 위하여 투쟁하였다. 1519년 루터와 함께 라이프치히 논쟁에도 참석하였다.

비텐베르크 대학교수로 있으면서 개신교 신학의 기초를 세우는 데 노력하였다. 신학자들의 신학적 차이를 화해시키는 관용적 인물로 종교개혁 신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저서로는 《신학 강요》, 《아우크스부르크 신앙 고백》 등이 있다.[2]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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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신학 강요, 1535/36>에서 1521편과 대조적으로 율법의 세가지 용도에 대하여 저술하였는 데, 그것은 시민법(모든 자에게 적용), 교육적(사람의 죄악을 드러내어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기능), 규범적( 이신칭의함을 얻은 자들이 어떠한 선행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가를 알려줌) 이었다.[3] 존 칼빈의 신학은 이 면에서 만큼은 멜란히톤의 신학을 인용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반박하였다.(1549년) 이것은 개혁주의자들 가운데서도 아직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아래 있었음을 알 수 있다.[4]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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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는 《탁상담화》에서 멜란히톤에 대해 "양심이 선한 분이어서 매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인물"로 높이 평가했다.[5]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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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가 없으면 시민을 도덕적으로 고양시킬 수 없다. 또한 법리는 대부분 종교적 교리에 의해 형성된다.[6]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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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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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n.d.). 그리스도교의 역사 - “멜란히톤”.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017년 10월 16일 확인함.
  2.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n.d.). 세계인명 - “멜란히톤”.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017년 10월 16일 확인함.
  3. Fesko, J. V., 1970-. 《The theology of the Westminster standards : historical context and theological insights》. Wheaton, Illinois. 272쪽. ISBN 978-1-4335-3311-2. 
  4. Clark, R. Scott (2008). 《Recovering the Reformed confession : our theology, piety, and practice》. Phillipsburg, N.J. 956/9975쪽. ISBN 978-1-59638-773-7. 
  5. 마르틴 루터; 편집부 역 (2015). 《탁상담화》. 크리스챤다이제스트. 402쪽. ISBN 8944700494. 
  6. Hinlicky02/01/2004, Paul R. “A Review of Law and Protestantism: The Legal Teachings of the Lutheran Reformation” (영어). 2020년 1월 17일에 확인함.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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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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