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수 (작가)
이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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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보 | |
출생 | 1912년 1월 5일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군 양산읍 북정리 |
사망 | 1981년 1월 24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관악구 | (69세)
국적 | 대한민국 |
언어 |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
직업 | 아동 문학가 겸 시인 |
학력 | 경남마산고등상업학교 졸업(1931년) |
경력 | 한국아동문학회 부회장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객원교수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객원교수 한국아동문학가협회 회장 |
본관 | 월성 |
필명 | 호(號)는 동원(冬原) |
활동기간 | 1925년~1980년 |
장르 | 아동 문학, 시문학 |
수상 | 197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78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문학부문 1980년 대한민국 문학상 아동문학 부문 |
배우자 | 최순애 |
자녀 | 3남 3녀(6남매) |
형제 | 1남 6녀 중 다섯째(외동 아들) |
친지 | 최영주(손윗처남) |
주요 작품 | |
동시 《고향의 봄》 | |
웹사이트 | 이원수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
이원수(李元壽, 1912년 1월 5일[1]~1981년 1월 24일)는 대한민국의 아동 문학가 겸 시인으로, 본관은 월성(月城)이고, 호(號)는 동원(冬原)이다.[2] 일제 시대의 경남 양산군의 양산읍 북정리에서 1남 6녀(7남매) 중 다섯째(외동아들)로 출생하여, 생후 8개월 때(1912년 9월 10일 )에 경남의 마산부로 이사했다.
생애
[편집]- 1912년 1월 5일1911년 11월 17일)에 일제 강점기 조선 시대의 경상남도 양산군 양산읍 북정리에서 외동아들(1남 6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음력
- 1912년 9월 10일일제 시대의 경상남도의 마산부로 이사했다. , 친가 가내 직계 일족들과 함께
- 1925년 시문학 집필에 처음으로 손을 대기 시작함.
- 1926년 동시 《고향의 봄》이 소파 방정환 선생이 만든 잡지인 《어린이》에 당선되었다. 이 동요는 바이올린 연주자 홍난파 음악가의 작곡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이 애창되는 노래가 되었다.[3]
- 1927년 〈기쁨사〉의 동인이 되어 활발한 동요 가사 창작을 했다.[3]
- 1935년 당시 근무하던 직장인 〈경남 함안 금융조합〉의 조합원들과 결성한 〈문학 모임 '독서회' 사건〉으로 1년간 옥고.
- 1936년 6월, 《오빠 생각》의 작가인 최순애와 결혼
- 1947년 〔박문출판사〕의 편집국장 등으로 4년간 일함.
- 1949년 동화 〈숲속의 나라〉를 《어린이나라》에, 소년소설 〈5월의 노래〉를 《진달래》에 연재, 동요와 함께 동화·소년소설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3]
-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 때, 경기공업학교[4] 서무직함에서 일한 경력 때문에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전투 성공 직후 공산주의자로 몰렸다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인해, 1950년 10월 5일 당시 법무부 장관 이우익(李愚益)의 조치로써 사면복권 조처됨.
- 1951년 〔박문출판사〕의 편집국 국장 사퇴.
- 1952년 경북의 대구로 피난하여 《소년세계》를 창간하여 편집 주간 겸 편집위원 등으로 3년간 근무.
- 1954년 한국아동문학회 창립, 동회 부회장 직으로 추대됨.
- 1956년 아동 월간지 《어린이 세계》 주간 겸 편집위원 등을 맡음.
- 1971년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 역임.
- 197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
- 1978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문학부문 수상.
- 1980년 아동 문학 작가 분야에서 모두 은퇴 직후 대한민국 문학상 아동문학 부문 수상.
- 1981년 구강암으로 별세(향년 70세).
사후 추모
[편집]- 1984년 이원수 문학전집(전 30권, 웅진) 출판.
평가
[편집]그는 외재율 중심의 재래적 동요에서 내재율 중심의 현실참여적 동시를 개척하고 산문문학으로서 장편동화와 아동소설을 확립하며 부단한 비평활동을 통한 아동문학 확립에의 기여 등 문학사적으로 큰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된다.[3]
친일 행적
[편집]1940년부터 1945년 사이에 동시 두 편, 자유시 한 편, 수필 두 편 모두 다섯 편의 친일 작품을 조선금용조합연합회 기관지 《반도의 빛 (半島の光)》에 발표했다. 1942년 8월에 실린 친일 동시 《지원병을 보내며》[5]에서는 일본이 벌인 태평양 전쟁에 참전할 지원병을 위해 후방에서 병역봉공을 다해야 한다고 표현했으며, 자유시에서는 농민시 형식을 빌려 농업보국에 정성을 쏟아 총후봉공의 완수를, 수필에서는 편지글 형식을 써서 어린이들이 하루바삐 내선일체와 황국신민이 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노력해야 함을 강하게 주장했다.[6]
이로 인해 그는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화예술 중 연극영화 부문에 선정되었다.
주요 작품
[편집]그의 작품은 초기 〈고향의 봄〉·〈비누 풍선〉 등과 같이 율동적이며 감각적인 경향에서 1940년대 동시 〈어머니〉에 나타난 바와 같이 현실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경향으로 변천되었다.[3]
- 《고향의 봄》
- 《겨울나무》
- 《엄마 없는 날》
- 《꼬마 옥이》
- 《숲속 나라》
- 《민들레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