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화원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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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원부인
月華院夫人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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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의 후궁 | |
재위 | 미상 |
대관식 | 월화원부인 |
전임 | 신주원부인(信州院夫人) |
후임 | 소황주원부인(小黃州院夫人) |
신상정보 | |
출생일 | 미상 |
사망일 | 미상 |
가문 | 미상 |
부친 | □영장 |
모친 | 미상 |
배우자 | 태조 왕건 |
월화원부인(月華院夫人)은 고려의 초대 왕 태조 왕건의 제23비이다.
생애
[편집]《고려사》〈열전〉의 월화원부인 항목에는, 대광(大匡) 영장(英章)의 딸이며 기록에 그 성씨를 잃었다고만 적고 있다[1]. 또 영장이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 역시 찾아볼 수가 없다.
현대의 일부 학자들은 월화원부인의 출신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점, 또 월화원부인이 제23비에 머물러 있는 점 등을 두고 그녀와 그녀의 집안이 신라 출신이 아니며, 또 그 지위가 그다지 높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2].
앞서 언급한대로 월화원부인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 그녀의 자세한 생애는 물론, 생몰년이나 능지 조차 알 수 없다. 호는 월화원부인(月華院夫人)이다. 남편 태조와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다.
기타
[편집]- 1981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김성한의 대하소설 《왕건》 제168회에서는, 월화원부인을 후백제 지역의 군관 영장의 딸로 묘사하고 있다. 또 왕건이 견훤의 아버지인 아자개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낼 때 월화원부인이 바쳐진 것으로 나오며, 성을 양씨(梁氏)로, 이름을 월화로 나타내고 있다[3].
가계
[편집]출처
[편집]- ↑ 《고려사》권88〈열전〉권1 - 월화원부인
- ↑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월화원부인〉항목”. 2016년 3월 3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6월 30일에 확인함.
- ↑ 김성한 (1981년 7월 28일). “왕건 (168)”. 동아일보. 2012년 6월 30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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