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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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순식
王順式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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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시대의 호족 | |
이름 | |
휘 | 순식(順式) |
신상정보 | |
출생일 | 생년 미상(生年 未詳) |
출생지 | 미상 |
사망일 | 몰년 미상(沒年 未詳) |
사망지 | 미상 |
왕조 | 후삼국 시대, 고려 |
배우자 | 미상 |
자녀 | 왕수원(王守元), 왕렴(王廉) |
종교 | 불교(佛敎) |
묘소 | 미상 |
왕순식(王順式, ? ~ ?)은 명주(현 강원도 강릉시)의 호족이며, 고려의 대광(大匡)이다. 명주에서 장군을 자칭하며 궁예, 왕건등과 오래도록 대립하였으나 허월(許越)의 설득으로 왕건에게 귀부한다.
생애
[편집]왕순식은 후삼국시대의 명주 호족이다. 원래 이름은 순식이며, 그의 성씨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정식 사서에는 성(姓)이 없이 순식으로 전한다.[1]
891년 궁예가 양길의 명을 받고 강원도 일대를 정벌할 당시,[2] 순식은 명주 장군을 자칭하며 명주에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 궁예와 오래도록 대치하여 명주에서 독자적인 세력으로 남았다. 918년 궁예가 사망하고 왕건이 고려를 세웠을 때에도 왕건에게 복종하지 않았다.[3]
922년에 시랑 권열(權說)이 왕건에게 아뢰기를 순식의 아비가 개경에서 승려로 있음을 알리며 허월로 하여금 귀부하도록 설득하길 청하였다. 허월의 설득으로 순식은 왕건에게 맏아들 수원을 보내니 왕건이 왕씨 성을 하사한다.[4][5] 이후 아들 왕장명과 병사 600명을 또 보내며 왕건을 숙위하도록 한다.[6]견훤의 신라급습 이후 928년 정식으로 자제들을 이끌고 개경에 내조하고 왕건을 알현하니[7] 왕건이 매우 기뻐하여 그를 대광(大匡)으로 임명하고 왕씨 성을 하사한다. 또한 아들 왕장명에게 렴이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원보(元甫)에 임명한다.[8]
936년 신검을 토벌하는 일리천 전투에 병사들을 이끌고 중군에서 기병을 통솔하며 삼한통일에 기여한다.[9]
가계
[편집]왕순식이 등장한 작품
[편집]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왕순식 - 디지털강릉문화대전”. 2024년 2월 17일에 확인함.
- ↑ “삼국사기 권 제11 신라본기 제11”.
- ↑ “왕순식(王順式)”. 2024년 2월 17일에 확인함.
- ↑ “고려사 권1 > 세가 권제1 > 태조(太祖) 5년 > 7월”.
- ↑ “고려사절요 > 고려사절요 권1 > 태조신성대왕(太祖神聖大王) > 태조(太祖) 5년 > 7월”.
- ↑ “고려사절요 권1 > 태조신성대왕(太祖神聖大王) > 태조(太祖) 5년 > 7월”.
- ↑ “고려사 > 권1 > 세가 권제1 > 태조(太祖) 11년 > 1월”.
- ↑ “고려사 권92 > 열전 권제5 > 제신(諸臣) > 왕순식 > 왕순식”.
- ↑ “삼국사기 권 제50 열전 제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