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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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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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 |||
생년월일 | 1970년 3월 5일 | (54세)|||
출신지 | 경기도 인천시 | |||
신장 | 176 cm | |||
체중 | 86 kg | |||
선수 정보 |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
수비 위치 | 포수 | |||
프로 입단 연도 | 1993년 | |||
드래프트 순위 | 1993년 2차 1순위(쌍방울 레이더스) | |||
첫 출장 | KBO / 1993년 | |||
마지막 경기 | KBO / 2000년 | |||
연봉 | 3,400만원 | |||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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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민(1970년 3월 5일 ~ )은 전 KBO 리그 前 쌍방울 레이더스,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의 포수이며 국가대표 출신으로 큰 기대를 모았으나[1] 갑작스런 방위복무 뿐 아니라[2] 연습생 출신 박경완에게 밀려 설 자리를 잃자 1997년 5월 25일 1(본인) 대 2(김성한 나성열) 트레이드를 통해[3] 한화 유니폼을 입었는데 이 팀에서 잠시나마 주전포수를 맡기도 했다.
출신학교
[편집]선수 시절
[편집]- 1993년 4월 30일 전주 OB 베어스전에 선발로 나선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 소속의 투수 김원형은 본인(김충민)과 배터리를 이뤄 역대 7번째 노히트노런 대기록을 수립했다. 탈삼진은 6개였고 사사구는 1개였다. 팀은 3-0으로 승리했다.
통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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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편집]- ↑ 김홍식 (1997년 7월 20일). “한화 김충민 방출설움 딛고 후반기 팀 상승세 한몫”. 중앙일보. 2022년 12월 13일에 확인함.
- ↑ 연합 (1995년 4월 27일). “<프로야구화제> 방위병 출전금지 각팀전력 큰 변화”. 연합뉴스. 2022년 12월 13일에 확인함.
- ↑ “한화 김성한·나성열 쌍방울행”. 한겨레신문. 1997년 5월 27일. 2022년 12월 13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