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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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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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7년 9월 6일 일본 도쿄 |
사망 | 2020년 5월 30일 대한민국 | (92세)
성별 | 남성 |
직업 | 학자 |
학문적 배경 | |
학력 | 캐나다 앨버타 대학교 대학원 이학박사 |
학문적 활동 | |
분야 | 수학, 철학, 인류학, 언어학 |
하위 분야 | 위상수학, 미적분학, 수학사, 문화인류학, 비교언어학 |
소속 기관 | 한국수학문화연구소 |
영향받음 | 장기원[1] |
김용운(金容雲, 1927년 9월 6일 ~ 2020년 5월 30일)은 대한민국의 수학자, 철학자, 문명 비평가이다. 수학, 철학, 인류학, 언어학의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였으며, 한국의 수학사를 확립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양대학교 수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본관은 광산이다.[2]
생애
[편집]김용운은 192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3] 와세다 대학을 입학한 해에 해방을 맞았고, 1946년에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남도 나주로 귀향하였다.[4] 1947년부터 목포고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등에서 수학 교사로 재직하면서 수학을 대중화할 필요성을 느꼈고, 후일 여러 수학 대중서를 집필하는 계기가 되었다.[5] 10여 년 동안 교편을 잡은 뒤 미국과 캐나다에서 유학하면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4]
1970년대 후반에는 수학사를 연구하였고, 1980년대부터는 수학과 역사를 접목하며 한국과 일본을 비교문화적으로 분석해 왔다.[5] 공동체의 집단 무의식을 뜻하는 원형과 공동체가 놓인 풍토가 언어와 역사의 발달에 관여하였다는 구조주의 원형사관을 창안하였다.[4] 1983년에 한국수학사학회를 창립하여 초대 회장을 맡았으며[6], 1994년에는 자신의 동생인 김용국 한양대학교 교수와 함께 웅진출판(현재의 웅진씽크빅)의 수학 학습지 브랜드인 웅진용운수학의 개발 과정에 참여하였는데 이는 웅진의 학습지 브랜드인 씽크빅의 전신이기도 하다.[7][8] 평생 150여 권의 책을 집필하였다.[3]
학력
[편집]경력
[편집]-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 조교수 (1962-1965)
- 일본 고베 대학 객원교수
- 일본 도쿄 대학 객원교수
- 일본 국제문화연구센터 객원교수
- 한양대학교 수학과 교수 (1969-1993)
- 한국수학사학회 회장
- 한양대학교 수학과 명예교수 (1994-2020)
- 방송문화진흥원 이사장 (2000-2003)
- 한국수학문화연구소 소장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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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편집]- ↑ 이상구; 이재화 (2011). “최초의 한국수학사 전문가 張起元” (PDF). 《제47회 전국수학교육연구대회 프로시딩》 (한국수학교육학회): 69. 2020년 5월 31일에 확인함.
- ↑ 김창욱 (1982년 7월 3일). “광산김씨”. 중앙일보. 2020년 5월 31일에 확인함.
- ↑ 가 나 임동근 (2020년 5월 30일). “한국 수학사 확립의 일등공신 김용운 교수 별세(종합)”. 연합뉴스. 2020년 5월 31일에 확인함.
- ↑ 가 나 다 강성만 (2018년 8월 19일). ““북한은 ‘핵이란 독을 바른 토끼’…한반도 중립화 기회죠””. 한겨레. 2020년 5월 31일에 확인함.
- ↑ 가 나 이영미 (1999년 11월 1일). “수학자 김용운의 1백번째 저서 ‘카오스의 날개짓’”. 국민일보. 2020년 5월 31일에 확인함.
- ↑ “학회소개”. 《한국수학사학회》. 2020년 5월 31일에 확인함.
- ↑ “이제부터의「수학」 “저, 김용운이 맡겠습니다””. 동아일보. 1994년 1월 21일. 2020년 5월 31일에 확인함.
- ↑ “[학습지 업체] 웅진씽크빅”. 중앙일보. 2000년 11월 22일. 2020년 5월 31일에 확인함.
- ↑ 김용운 (2006년 1월 1일). “[특별기고] 김용운 교수‥國格을 높여야 '한민족 르네상스' 이룬다”. 한국경제. 2020년 5월 31일에 확인함.
- ↑ 조연수 (2015년 10월 9일). “[OBS '명불허전'] 수학자 김용운 교수 "한중일 뿌리 깊은 갈등, 고대사에 그 답이 있다"”. OBS. 2020년 5월 31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