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교장
대한민국의 사적 | |
종목 | 사적 (구)제465호 (2005년 6월 13일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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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일제강점기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29 |
정보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해지) | |
종목 | 유형문화재 (구)제129호 (2001년 4월 6일[1] 지정) (2005년 6월 13일 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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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
경교장(京橋莊)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29 (평동)에 위치하고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일본식 주택이다. 일제강점기의 금광업자 최창학의 별장이자 1945년 11월 4일부터 1949년까지 김구의 사저이자 공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청사,[2] 한국독립당 본부였다. 1949년부터 1952년까지는 주한중화민국 대사관저로 활용되었다. 별칭은 죽첨장(竹添莊), 죽첨정(竹添町)이다. 2005년 6월 13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65호로 지정되었다.
역사
[편집]경교장은 최창학의 별장이었는데 김구에게 넘겨주고나서 김구가 이곳에서 생활하다 1949년 6월26일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개요
[편집]일제시대 개인 별장
[편집]경교장은 광화문(경복궁)과 서대문 사이에 있던 동양극장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서대문역 인근 종로구 평동 강북삼성병원 부지이다. 금광으로 돈을 번 친일파 최창학 소유의 별장이었던 이 집은 건축면적 396.69m2, 연면적 945.45m2(지하1층, 지상2층)규모로 지은 일본식 건물로, 1938년 완공 당시에는 죽첨장(竹添莊)이라 하였다.
미군정 시기 임시정부 청사
[편집]8·15 광복 이후 최창학이 김구의 거처로 제공하였는데, 김구가 죽첨장이라는 일본식 이름 대신 근처에 있는 경교[京橋;경구교(京口橋)의 약칭]라는 다리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개명하였다.
1945년 11월 임시정부 국무위원들과 함께 귀국한 김구는 1949년 6월 26일 경교장 집무실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되기까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건국에 대한 활동 및 반탁, 통일운동을 이끌었다.
김구가 반탁·건국·통일 운동을 주도할 때에는 흔히 서대문 경교장이라고 일컬었으며, 임시정부 성격인 비상국민회의의 국무회의가 열린[3] 청사로[4] 민족진영 인사들의 집결처로 이용되었다.
대사관저에서 병원 현관으로 변천
[편집]이후 최창학에게 반환되었고 다시 중화민국 대사관저로 사용되다가 6·25전쟁 때에는 미국 특수부대가 주둔하는 등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1967년 삼성재단에서 매입, 건물 뒷면에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본관을 붙여 건축하면서 오랜 기간 병원 현관으로 사용되었다.
근현대사 사적
[편집]당초 2001년 4월 6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었으나 한국 근·현대사에서의 동 건물의 중요성 등이 재평가되면서 2005년 6월 13일 국가 지정문화재 사적 제465호로 승격되었다. 건물 2층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김구 선생의 옛 집무실을 삼성에서 김구 기념실로 운영하기도 했다.
2009년 8월 14일에는 60년 만에 경교장 전체를 복원하기로 하여, 건물 내에 있던 약품 창고[5] 같은 병원 시설들을 모두 옮기고 2011년 3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2013년 3월 1일 개관하였다. 2021년 11월부터 12월까지 보수 공사에 들어갔다.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서울특별시고시제2001-98호, 《서울특별시문화재지정》, 서울특별시장, 서울시보 제2324호, 37면, 2001-04-06
- ↑ “[경교장]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경교장 전시 해설”. 서울역사박물관. 2021년 5월 26일.
- ↑ “백범의 숨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흔적이 남다”. 문화재청. 2010년 7월 2일.
- ↑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복원한다”. 서울경제. 2016년 6월 2일.
- ↑ “역사 현장 속으로, 백범 김구의 정신이 깃든 경교장을 가다”. 《내 손안의 서울》 (서울특별시). 2023년 1월 19일.
외부 링크
[편집]- 경교장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