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리 혜성
핼리 혜성 1P/Halley | ||
발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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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자 | 에드먼드 핼리 | |
발견일 | 1531년 | |
궤도 성질 | ||
궤도 긴반지름(a) | 17.8 AU | |
근일점(q) | 0.586 AU | |
원일점(Q) | 35.1 AU | |
궤도 경사(i) | 162.26269 | |
궤도 이심률(e) | 0.967 | |
물리적 성질 | ||
지름 | 14.9×8.2 km[1] | |
평균 밀도 | 0.6 g/cm3 | |
질량 | (2.2ㅡ3)×1014 | |
탈출 속도 | 2 m/s | |
반사율 | 0.04 | |
자전 주기 | 52.8 시간 (2.2 일) |
핼리 혜성(공식 명칭은 1P/Halley)은 그 주기와 다음 접근 시기를 예측한 에드먼드 핼리의 이름을 딴 혜성으로, 약 75~76년을 주기로 지구에 접근하는 단주기 혜성이다. 지상에서 맨눈으로 관측 가능한 유일한 단주기 혜성이기도 하다. 다른 더 밝은 혜성들도 존재하지만 그런 혜성들은 몇 천년에 한번 정도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관측된 연도는 1986년 2월 9일이었으며, 다음 접근 시기는 2061년 7월 28일로 예측된다.
성분, 밀도
[편집]핼리혜성은 대부분 얼음과 먼지로 이루어져 있다. 얼음의 80%는 물이 얼어붙은 것이고, 일산화탄소가 얼어붙은 것이 약 15%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이산화탄소, 메탄, 암모니아가 얼어붙은 것이다. 다른 혜성들도 화학적으로 비슷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그에 반해 밀도는 작은 여행용 가방 크기 정도에 불과하다.[2]
관측과 역사
[편집]핼리혜성은 태양 근처에 접근하면서 급격히 밝아져 쉽게 관측이 가능해진다. 마찬가지로, 태양으로부터 멀어지면서 급격하게 어두워진다.
기록상으로는 기원전 240년경 중국 천문학자에 의해 최초로 관측되었고, 1531년 이후 계속 관측되고 있다.[2]
1909년 8월, 핼리혜성이 태양에서 4억 8,000만 km 떨어져 있을 때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1910년 4월에는 태양에서 8,900만 km 떨어진 거리까지 접근했다. 그 뒤, 1982년 10월 16일 미국 팔로마 천문대에서 발견됐다.[2]
조선에서의 출현 및 관련 기록
[편집]조선에서는 특히 반란이나 쿠데타의 징조로 혜성을 해석하곤 했는데, 혜성이 흰 빛을 띠면 장군이 역모를 일으키며 꼬리가 길고 클수록 재앙이 크다고 생각했다.
- 1456년 : 조선 세조 때 혜성의 출현으로 성삼문 등 사육신으로 후대에 칭하는 이들이 거사를 도모하였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나 있다. 하지만 5일 후 성균사예 김질의 밀고로 실패로 돌아갔다.
- 1531년 : 조선 중종 때 좌의정까지 오른 김안로는 권력을 남용하다 세자 호(峼)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계비인 문정왕후를 폐위하려다 발각되어 1537년 사약을 받았다. 조선왕조실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혜성이 보이는 조짐의 응보는 큰 것이다. 김안로가 등용되자마자 혜성의 요괴로움이 바로 나타나니, 하늘이 조짐을 보임이 그림자와 메아리보다도 빠른 것이다.
- 1607년 : 조선 선조 때로 왜란 전후의 어수선한 혼란으로부터 점차 안정을 다지던 무렵이었다. 공교롭게도 그해 선조는 병석에 누워 다음해 사망에 이른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다음의 기록이 남아 있다.
구름이 짙게 끼어 혜성을 살필 수가 없다.
- 1682년 : 조선 숙종 때로 혜성 출현 다음날 숙종은 신하들에게 혜성의 변고를 두려워한다는 뜻을 알리고, 형조판서에게 감옥의 죄수를 속히 판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 1759년 : 조선 영조 때로 영조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기고 있던 시기였는데, 혜성의 계속된 출현으로 천체의 재앙을 늦추는 방도는 오직 세자 저하께서 몸을 돌이켜 수성하는 데 있을 것이라는 요지의 상소가 올라왔다. 이에 사도세자는 따르겠다는 표시를 하였으나, 2년 후 영조 몰래 궁궐을 빠져나가 유람을 즐기는 등 계속되는 돌발 행동이 있었다. 그로 인해 영조의 불신은 더욱 커져 결국 1762년 뒤주에 갇혀 사망에 이른다.
- 1835년 : 조선 헌종 때로 혜성의 출현을 차분하고 과학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다음의 기록이 남아 있다.
혜성이 저녁에 나타났는데 빛은 희고 꼬리의 길이는 2척 가량이었으며 북극과의 거리가 32도였다. 또 4경에 혜성이 서쪽으로 사라졌는데, 헌종은 측후관을 임명하여 윤번으로 숙직하게 했다.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JPL Small-Body Database Browser: (1P/Halley)” (last observation: 1994-01-11). Jet Propulsion Laboratory. 2016년 9월 30일에 확인함.
- ↑ 가 나 다 헬리혜성, 《글로벌 세계 대백과》
참고 자료
[편집]- 사육신을 궁지로 몰아넣은 핼리혜성 (상·하), 《사이언스타임즈》, 2008년 7월 31일, 2008년 8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