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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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 국가등록문화재 (구)제11호 (2002년 5월 31일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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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 | 1동 연면적 7,097.3m2 |
시대 | 일제강점기 |
소유 | 서울특별시 |
위치 | |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25 (태평로1가) |
좌표 | 북위 37° 34′ 3.2″ 동경 126° 58′ 35.8″ / 북위 37.567556° 동경 126.976611° |
정보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
부민관(府民館) 또는 경성부민관(京城府民館)은 일제 강점기 경성부 부립(府立)의 다목적 건물이다. 1934년 7월 공사를 시작하여 1935년 12월 10일 완공하였다.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25 (태평로1가) 위치에 세워졌으며, 완공당시 철근 콘크리트 구조 3층, 연면적 5,676m², 높이 45m로 대집회용 건물로써 강당과 사교실등의 편의시설을 갖춘 경성부에서도 손꼽히는 건물이었다. 대강당은 규모는 약 2,000석으로 대소집회, 연극, 강연회등을 치를 수 있었다. 광복이후 국회의사당, 세종문화회관 별관을 거쳐 현재는 서울시의회 의사당 및 사무처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1]
연혁
[편집]완공 이후 여러 기관을 거쳐 1991년부터는 서울시의회에서 사용하고있다.[1] 1980년 정문과 현관이 철거되었고, 2002년 등록문화재 제11호 '서울 구 국회의사당'으로 등록되었다.[2][3]
시기 | 용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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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1950년 | 경성부민관 |
1954년~1975년 | 국회의사당 |
1975년~1990년 | 세종문화회관 별관 |
1991년~ | 서울시의회 의사당 및 사무처 |
역사
[편집]부민관터는 본래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위패를 봉안한 덕안궁이 있던 곳이다. 경성전기회사는 서울의 전기사업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그 대가로 50만원을 납부하였다. 그 돈을 바탕으로 경성부의 부민들을 위하여 5,600여 제곱미터의 규모의 다목적 강당을 지어 문화공연장으로 사용하였다.
일제말기에 부민관은 일제의 전쟁독려를 위한 정치집회를 위하여 사용되기도 하였다. 모윤숙과 이광수는 부민관에서 일제의 전쟁에 협력하라는 연설을 하였다.
해방 후 미군 사령부가 사용하였고, 한국전쟁 때 서울수복 이후부터 1975년까지 국회의사당으로 사용을 하였다. 이후 세종문화회관 별관로 이용하다가 1991년 부터 지방자치제 확대 실시와 함께 서울특별시의회가 사용하게 되었다.
부민관 의거
[편집]1945년 7월 24일에 부민관에서는 매국노 박춘금의 '아시아민족의 해방' 강연회와 '남년청년 분격웅변대회'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조문기, 유만수, 강윤국 등이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고 터뜨려 대회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1995년에 서울특별시 중구에 부민관 폭탄 의거 터 표석이 설치되었다.[4]
사진
[편집]-
2015년 4월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가 나 서울특별시의회. “시의회 건축물”. 《서울특별시의회》. 2016년 4월 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6년 2월 14일에 확인함.
- ↑ 문화재청 (n.d.). “서울 구 국회의사당 - 문화유산정보”. 《문화채청》. 2013년 6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6년 2월 14일에 확인함.
- ↑ 문화재청고시제2002-24호(문화재등록), 제15114호 / 관보(정호) / 발행일 : 2002. 5. 31. / 92 페이지 / 296.2KB
- ↑ “부민관 폭탄 의거 터 표석 위치”.
참고 자료
[편집]- 서울 구 국회의사당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