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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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군(竹山郡)은 현 안성시 죽산면을 중심으로 안성시의 동부 3개 면(일죽면·죽산면·삼죽면)과 용인시 처인구의 동남부 2개 면(원삼면·백암면)을 관할하던 조선 시대의 행정 구역이다.
역사
[편집]- 백제 : 개차산군(皆次山郡)으로 불렸다.
- 5세기 말 :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 757년(경덕왕 16년) : 전국의 행정체제 및 행정단위의 명칭을 개혁하면서 개산군(介山郡)으로 개명하고, 음죽현을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 891년(진성여왕 5년) : 지방 호족 기훤(箕萱)의 영지가 되었다. 궁예가 잠시 그 휘하에 있다가 북원경의 양길에게 투항했다.
- 899년(효공왕 3년) : 후고구려 왕이 된 궁예가 비뇌성(非惱城: 안성 죽주산성) 전투에서 양길의 군대를 격파하고 한강 수로를 장악했다.
- 900년 : 비뇌성을 발판으로 현재의 경기도 남부와 충청북도 일대가 후고구려의 영역이 되었다.
- 926년 : 고려가 개산군을 죽주(竹州)로 승격시켰다.
- 933년 : 단련사(團練使)가 파견되었다.
- 고려 목종 : 읍이 일시 폐지되었다.
- 1018년(고려 현종 9년) : 광주목(廣州)의 속현이 되었다.
- 고려 명종 : 읍이 복구되어 감무를 두었다.
- 1413년(조선 태종 13년) : 죽산현(竹山縣)이 되었다. 당시 죽산현은 충청도에 속했다.
- 1434년(조선 세종 16년) : 죽산현이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이관되었다.
- 1543년(조선 중종 38년) : 죽산도호부로 승격되었다.
- 1895년 6월 23일(음력 윤5월 1일) : 23부제로 행정구역이 재편되면서 충주부 관할의 죽산군이 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경기도에 편입되었다.
- 1914년 4월 1일 : 일제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안성군과 용인군에 분할 편입되고, 면이 대거 합병되었다.[1]
부령 제111호 구 행정구역 신 행정구역 제촌면(蹄村面) 안성군 죽일면 능국리 북이면(北二面) 신흥리, 화곡리 북일면(北一面) 고은리, 당촌리, 방초리 남이면(南二面) 송천리, 월정리, 장암리, 죽림리, 화봉리 남일면(南一面) 가리, 금산리, 산북리, 주천리 부이면(府二面) 안성군 죽이면 두현리, 장계리, 장능리 부일면(府一面) 매산리, 장원리, 죽산리 남면(南面) 당목리, 두교리, 용설리, 칠장리 서일면(西一面) 안성군 죽삼면 내장리, 덕산리, 용월리, 율곡리, 배태리 서이면(西二面) 기솔리, 남풍리, 내강리, 마전리, 미장리, 진촌리 서삼면(西三面) 가현리, 동평리 원일면(遠一面) 용인군 원삼면 고당리, 맹리, 미평리, 사암리, 좌항리 원삼면(遠三面) 가좌리, 가재월리, 독성리, 두창리, 문촌리, 죽능리, 학일리 근일이면(近一二面) 용인군 외사면 석천리, 옥산리, 용천리, 장평리 근삼면(近三面) 가창리, 근곡리, 근삼리, 근창리, 박곡리, 백암리
- 1915년 6월 1일 : 안성군 죽일면이 일죽면으로, 죽이면이 이죽면으로, 죽삼면이 삼죽면으로 각각 개칭하였다.[2]
- 1992년 9월 30일 : 안성군 이죽면이 죽산면으로 개칭하였다.[3]
- 1996년 3월 1일 : 용인군이 시(市)로 승격하면서, 외사면을 백암면으로 개칭하였다.
각주
[편집]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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